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능엄경 1권: 전문(全文) - 부처님이 아난에게 마음의 소재를 찾도록 자세히 묻고, 마음이 안, 밖, 눈, 혹은 중간에 있다는 견해를 차례로 논파하다.

능엄경 1권: 전문(全文) - 부처님이 아난에게 마음의 소재를 찾도록 자세히 묻고, 마음이 안, 밖, 눈, 혹은 중간에 있다는 견해를 차례로 논파하다.

능엄경 1권 요약

  1. 배경: 이야기는 사위국 기원정사에서 시작되며, 아난 존자가 탁발 중에 마등가녀의 유혹을 받아 계율을 범할 위기에 처합니다.
  2. 부처님의 구원: 부처님은 아난의 위기를 감지하고 문수보살을 보내어 신주(神呪)로 그를 구출합니다.
  3. 아난의 참회: 아난은 부처님께 돌아와 자신의 잘못을 참회하고, 부처님께 수행의 길을 가르쳐 달라고 청합니다.
  4. 부처님의 가르침: 부처님은 아난이 학식은 많으나 아직 깨달음을 얻지 못했음을 지적하며, 진정한 마음(진심)과 망상을 구별할 것을 강조합니다.
  5. 칠처징심(七處徵心): 부처님은 상세한 문답을 통해 아난에게 ‘마음’의 소재를 찾도록 유도하며, 마음이 몸 안, 밖, 눈, 중간 등에 있다는 견해를 차례로 논파합니다.
  6. 견성(見性)에 대한 논의: 부처님은 ‘보는 성품(견성)‘에 대해 논하기 시작하며, 그것이 태어나지도 죽지도 않고 영원히 존재하는 것임을 설명합니다.
  7. 아난의 의문: 아난은 부처님의 가르침에 의문을 품고, 진심이 영원하다면 왜 중생은 생사의 윤회를 겪는지를 묻습니다.

능엄경 1권 - 경전 전문

이와 같이 나는 들었다. 한때 부처님께서 사위국 기원정사에 계셨는데, 1,250명의 큰 비구 대중과 함께 계셨다. 그들은 모두 번뇌가 다한 대아라한(大阿羅漢)으로, 불법을 유지하고 모든 존재(유)를 초월한 부처님의 제자들이었다. 그들은 모든 국토에서 위의를 갖추고 부처님을 따라 법륜을 굴리며, 불법을 부촉받기에 합당한 이들이었다. 계율이 엄정하고 청정하여 삼계의 큰 모범이 되었으며, 무한한 분신(應身)으로 중생을 제도하고 미래의 중생들을 모든 번뇌와 짐에서 구제하였다. 그들의 이름은 대지 사리불, 마하목건련, 마하구치라, 부루나미다라니자, 수보리, 우파니사타 등이며, 그들이 상수가 되었다.

또한 무수한 벽지불(辟支佛)들과 무학(無學) 및 초발심(初發心)의 수행자들이 부처님이 계신 곳에 모였다. 이때는 비구들의 하안거가 끝나는 자자(自恣)의 날이었다. 시방의 보살들은 의문을 해결하기 위해 자비롭고 엄숙하신 부처님을 공경하며 비밀한 뜻을 구하려 하였다. 그때 여래께서 자리를 정돈하고 편안히 앉으시어, 대중을 위해 심오한 도리를 선포하셨다. 법회에 참석한 청정한 대중은 미증유(未曾有)의 법을 얻었다. 가릉빈가의 목소리가 시방세계에 울러 퍼지고, 수많은 보살들이 도량에 모였으니 문수스승(문수사리)이 그들의 우두머리가 되었다.

그때 파사익왕은 부친의 기일을 맞아 채식 요리를 준비하고 부처님을 궁전으로 청했다. 그는 진기한 음식과 최고의 맛으로 여래를 직접 맞이하고, 대보살들도 함께 청했다. 성안의 장자와 거사들도 스님들을 위해 음식을 준비하고 부처님이 오시기를 기다렸다. 부처님께서는 문수사리에게 명하여 보살들과 아라한들을 나누어 여러 재주(齋主)들에게 가게 하셨다. 오직 아난만이 일찍이 별도의 초청을 받아 멀리 갔다가 아직 돌아오지 않아 승가와 함께하지 못했다. 상좌 비구도, 아사리도 없이 홀로 돌아오는 길에 공양을 받지 못한 상태였다.

그때 아난은 발우를 들고 성안을 차례로 다니며 걸식하였다. 그는 마음속으로 가장 가난한 이로부터 공양받기를 원했는데, 그들이 깨끗하든 부정하든, 귀족(찰제리)이든 천민(전다라)이든 가리지 않았다. 그는 평등과 자비를 실천하며, 낮고 천한 이를 가리지 않고 모든 중생이 무량한 공덕을 성취하게 하려 했다. 아난은 이미 여래께서 수보리와 대가섭이 아라한이면서도 마음이 공평하지 못하다고 꾸짖으신 것을 알고 있었다. 그는 여래의 평등한 가르침을 찬탄하며 의심과 비방을 없애려 하였다. 성의 해자(垓字)를 건너 서서히 외문으로 들어가는 그의 모습은 엄숙하고 걸식의 규범을 따르고 있었다.

그때 아난은 걸식하던 중 음녀 구역을 지나다가 마등가녀의 강력한 환술에 걸리고 말았다. 그녀는 사비가라교(Kapila religion)의 범천주(Brahma Heaven Mantra)를 사용하여 그를 음란한 자리로 이끌었다. 그녀의 음탕한 몸이 그를 애무하여 계체(戒體)를 훼손하려던 찰나였다. 여래께서는 그가 음란한 술법에 해를 입고 있음을 아셨다. 식사를 마치고 즉시 돌아오신 부처님을 따라 왕과 대신, 장자, 거사들이 모두 법요를 듣고자 따랐다. 그때 세존의 정수리에서 백 가지 보배로운 광명이 뿜어져 나왔다. 광명 속에는 천 잎의 보배 연꽃이 나타나고, 그 위에 화신불(化身佛)이 결가부좌하고 앉아 신령한 주문을 선포하셨다. 부처님은 문수사리에게 그 주문을 가지고 가서 아난을 보호하라고 명하셨다. 악한 주문이 소멸되자 문수보살은 아난과 마등가녀를 부축하여 부처님이 계신 곳으로 돌아왔다.

아난은 부처님을 뵙자 절하고 슬피 울며, 시작 없는 옛적부터 오직 다문(多聞)에만 힘쓰고 도력(道力)을 닦지 못했음을 한탄하였다. 그는 시방의 여래들께 보리를 얻는 최초의 방편인 묘한 사마타(奢摩他), 삼마발제(三摩鉢提), 선나(禪那)를 가르쳐 주시기를 간절히 청했다. 그때 항하의 모래만큼 많은 보살들과 시방의 대아라한, 벽지불들도 법을 듣고자 하여 자리에 물러나 조용히 가르침을 기다렸다.

부처님께서 아난에게 말씀하셨다. “너와 나는 같은 핏줄이라 형제의 정을 나누고 있다. 네가 처음 발심했을 때, 내 불법(佛法)에서 어떤 훌륭한 상(相)을 보았기에 세속의 깊은 은애를 갑자기 버리게 되었느냐?”

아난이 부처님께 사뢰었다. “저는 여래의 32상(三十二相)이 뛰어나고 묘하며 비할 데 없음을 보았습니다. 부처님의 몸은 거울처럼 맑고 투명했습니다. 저는 항상 이런 상(相)이 욕망과 애욕에서 생겨난 것이 아니라고 생각했습니다. 왜냐하면 욕망의 기운은 거칠고 탁하여 비린내와 고름, 피가 뒤섞인 것이니, 이러한 지극히 청정하고 묘하며 밝은 자금색 빛(紫金光)의 모임을 생겨나게 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저는 그것을 우러러보고 부처님을 따라 삭발하게 되었습니다.”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훌륭하구나, 아난아! 너희는 마땅히 알아야 한다. 모든 중생이 시작 없는 옛적부터 계속해서 생사를 반복하는 것은, 상주(常住)하는 진심(眞心)이자 성품의 청정하고 밝은 본체를 알지 못하고, 대신 망상(妄想)을 쓰기 때문이다. 이 생각이 진실하지 않기 때문에 윤회가 있는 것이다. 이제 네가 무상보리(無上菩提)를 구하여 본성을 깨닫고자 한다면, 정직한 마음으로 내 물음에 답하여라. 시방의 여래들은 모두 생사를 벗어나는 동일한 길을 가는데, 그것은 바로 정직한 마음(直心)이다. 마음과 말이 정직하면, 처음부터 끝까지 모든 단계에서 굽음이 없을 것이다.”

“아난아, 이제 네게 묻겠다. 네가 여래의 32상에 처음 발심했을 때, 그것을 본 것은 무엇이며, 그것을 사랑하고 기뻐한 것은 누구냐?”

아난이 부처님께 사뢰었다. “세존이시여, 이 사랑하고 기뻐함은 저의 마음과 눈에서 나왔습니다. 제 눈이 여래의 뛰어난 상을 보았기 때문에, 제 마음이 사랑하고 기뻐함을 일으켰습니다. 그래서 생사를 버리기로 결심했습니다.”

부처님께서 아난에게 말씀하셨다. “네 말과 같이, 사랑하고 기뻐하는 진짜 원인은 네 마음과 눈에 있다. 만약 네가 마음과 눈이 어디 있는지 모른다면, 번뇌(진로)를 정복할 수 없다. 마치 도둑이 나라를 침범했을 때 왕이 군대를 보내 쫓아내려 하면, 군대는 도둑이 어디 있는지 알아야 하는 것과 같다. 네가 윤회에 흐르는 것은 마음과 눈의 허물 때문이다. 이제 묻노니, 너의 마음과 눈은 지금 어디에 있느냐?”

아난이 부처님께 사뢰었다. “세존이시여, 세간의 열 가지 중생들은 모두 인식하는 마음(식심)이 몸 안에 있다고 여깁니다. 여래의 푸른 연꽃 같은 눈을 보아도 부처님의 얼굴에 있습니다. 지금 저의 거친 감각기관(오근)과 네 가지 감각대상(사진)을 관찰해보면 단지 제 얼굴에 있으니, 이 인식하는 마음은 본래 몸 안에 있다고 생각합니다.”

부처님께서 아난에게 말씀하셨다. “너는 지금 여래의 강당에 앉아 있다. 기원정사를 보아라. 어디에 있느냐?”

“세존이시여, 이 웅장하고 청정한 강당은 급고독원(給孤獨園) 안에 있습니다. 기원정사는 사실 강당 밖에 있습니다.”

“아난아, 강당 안에서 무엇이 먼저 보이느냐?”

“세존이시여, 강당 안에서는 여래가 먼저 보이고, 다음으로 대중이 보이며, 그 후에 밖을 내다보아야 숲과 정원이 보입니다.”

“아난아, 네가 숲과 정원을 볼 수 있는 이유는 무엇이냐?”

“세존이시여, 이 큰 강당의 문과 창문이 활짝 열려 있기 때문에 강당 안에서 멀리까지 볼 수 있는 것입니다.”

그때 세존께서 대중 가운데서 금색 팔을 펴시어 아난의 정수리를 만지시며, 아난과 대중에게 말씀하셨다. “‘대불정 수능엄왕(大佛頂 首楞嚴王)‘이라는 삼매가 있으니, 이는 만행(萬行)을 완벽하게 갖춘 것으로, 시방의 여래들이 깨달음으로 나아가는 유일한 문이자 묘하게 장엄된 길이다. 너희는 이제 주의 깊게 들어라.” 아난은 절을 하고 겸허히 자비로운 가르침을 받들었다.

부처님께서 아난에게 말씀하셨다. “네 말처럼 너는 강당 안에 있고, 문과 창이 열려 있어 멀리 숲과 정원을 볼 수 있다. 그렇다면 이 강당 안에 있는 자 중에 여래는 보지 못하고 강당 밖의 것만 보는 자가 있겠느냐?”

아난이 대답했다. “세존이시여, 강당 안에 있으면서 여래는 보지 못하고 숲과 샘물만 본다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아난아, 너도 그와 같다. 너의 정신은 맑고 또렷하다. 만약 너의 맑고 또렷한 마음이 정말로 몸 안에 있다면, 마땅히 몸 안의 것을 먼저 알아야 한다. 자신의 몸 안을 먼저 보고 나서 밖의 사물을 보는 중생이 있느냐? 심장, 간, 비장, 위장을 보지 못한다 하더라도, 적어도 손톱과 머리카락이 자라는 것, 힘줄이 움직이는 것, 맥박이 뛰는 것은 분명히 알아야 하지 않겠느냐? 어찌 모를 수 있느냐? 만약 안의 것을 모른다면, 밖의 것을 안다고 하는 것은 근거가 없다. 그러므로 너의 깨닫고 아는 마음이 몸 안에 있다는 말은 옳지 않음을 알아야 한다.”

아난이 절을 하고 부처님께 사뢰었다. “여래의 이런 법문을 듣고 깨달으니, 제 마음은 사실 몸 밖에 있는 것 같습니다. 왜냐하면 방 안에 켜진 등불은 먼저 방 안을 비추고 문을 통해 마당을 비추기 때문입니다. 모든 중생이 몸 안은 보지 못하고 몸 밖만 보는 것은, 마치 등불을 방 밖에 두어 방 안을 비추지 못하는 것과 같습니다. 이 이치는 확실히 명백하여 의심할 여지가 없습니다. 여래의 뜻과 같지 않습니까?”

부처님께서 아난에게 말씀하셨다. “이 비구들이 방금 나를 따라 사위성에서 차례로 걸식하고 기원정사로 돌아왔다. 나는 이미 식사를 마쳤다. 비구들을 보아라. 한 사람이 먹으면 다른 이들이 배부르냐?”

아난이 대답했다. “아닙니다, 세존이시여. 왜냐하면 이 비구들이 아라한이라 할지라도 몸과 생명은 각기 다르기 때문입니다. 어찌 한 사람이 먹는다고 대중이 배부르겠습니까?”

부처님께서 아난에게 말씀하셨다. “만약 너의 깨닫고 알고 보는 마음이 실제로 몸 밖에 있다면, 몸과 마음은 서로 밖이 되어 연결되지 않을 것이다. 마음이 아는 것을 몸이 느끼지 못하고, 몸이 느끼는 것을 마음이 알지 못할 것이다. 내가 이제 나의 솜 같은 손(兜羅綿手)을 보여주마. 네 눈이 이것을 볼 때 마음이 분별하느냐?”

아난이 대답했다. “예, 세존이시여.”

부처님께서 아난에게 말씀하셨다. “서로 안다면 어찌 마음이 밖에 있겠느냐? 그러므로 너의 깨닫고 아는 마음이 몸 밖에 있다는 말은 옳지 않음을 알아야 한다.”

아난이 부처님께 사뢰었다. “세존이시여, 부처님 말씀대로 안을 보지 못하니 몸 안에 있는 것이 아니고, 몸과 마음이 서로 알아 분리되지 않았으니 몸 밖에 있는 것도 아닙니다. 저는 이제 그것이 특정한 곳에 있다고 생각합니다.”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지금 어디에 있느냐?”

아난이 말했다. “이 아는 마음은 안을 알지 못하면서 밖을 볼 수 있으니, 제 생각에는 감각기관(눈) 안에 숨어 있는 것 같습니다. 마치 누군가 수정 구슬로 눈을 가린 것과 같습니다. 물건으로 가려져 있지만 장애가 없어, 눈(근)이 보면 곧 분별이 따릅니다. 저의 깨닫고 아는 마음이 안을 보지 못하는 것은 눈(근) 안에 있기 때문이고, 밖을 장애 없이 분명히 보는 것은 눈(근) 안에 숨어 있기 때문입니다.”

부처님께서 아난에게 말씀하셨다. “네 말처럼 감각기관 안에 숨어 있는 것이 수정 구슬과 같다면, 누군가 수정 구슬로 눈을 가리고 산과 강을 볼 때, 수정 구슬도 보느냐 보지 못하느냐?”

“그렇습니다, 세존이시여. 수정 구슬로 눈을 가린 사람은 실제로 수정 구슬을 봅니다.”

부처님께서 아난에게 말씀하셨다. “만약 네 마음이 수정 구슬처럼 눈(근)과 결합되어 있다면, 산과 강을 볼 때 왜 눈은 보지 못하느냐? 만약 눈을 본다면 눈은 보이는 대상(경계)이 되니, 함께 보는 주체가 될 수 없다. 만약 눈을 보지 못한다면, 어찌 이 아는 마음이 수정 구슬처럼 눈(근) 안에 숨어 있다고 말할 수 있느냐? 그러므로 너의 깨닫고 아는 마음이 수정 구슬처럼 눈(근) 안에 숨어 있다는 말은 옳지 않음을 알아야 한다.”

아난이 부처님께 사뢰었다. “세존이시여, 저는 이제 이렇게 생각합니다. 중생의 내장은 안에 있고 구멍(공규)은 밖에 있습니다. 내장이 있는 곳은 어둡고 구멍이 있는 곳은 밝습니다. 지금 제가 부처님을 마주하여 눈을 뜨고 빛을 보는 것은 밖을 보는 것이고, 눈을 감고 어둠을 보는 것은 안을 보는 것입니다. 이 뜻은 어떻습니까?”

부처님께서 아난에게 말씀하셨다. “네가 눈을 감고 어둠을 볼 때, 이 어둠이 네 눈과 마주 대하느냐, 대하지 않느냐? 만약 눈과 마주 대한다면 어둠이 눈앞에 있는 것이니, 어찌 안에 있다고 하겠느냐? 만약 안에 있다고 한다면, 해와 달, 등불이 없는 어두운 방에 있을 때 그 방 안의 어둠이 모두 너의 내장이어야 할 것이다. 만약 눈과 마주 대하지 않는다면, 본다는 것이 성립되지 않는다. 만약 밖을 떠나 안으로 마주 대하며 본다고 한다면, 눈을 감고 어둠을 보는 것을 ‘몸 안을 본다’고 하니, 눈을 뜨고 밝음을 볼 때는 왜 너의 얼굴을 보지 못하느냐? 만약 얼굴을 보지 못한다면 ‘안으로 대한다’는 것은 성립되지 않는다. 만약 얼굴을 보는 것이 성립된다면, 이 아는 마음과 눈(근)이 허공에 있는 것이니 어찌 안에 있다고 하겠느냐? 만약 허공에 있다면 너의 몸이 아니다. 그렇다면 지금 너의 얼굴을 보고 있는 여래도 너의 몸이 되어야 할 것이다. 너의 눈은 알더라도 몸은 느끼지 못할 것이다. 만약 몸과 눈이 둘 다 안다고 고집한다면 곧 두 개의 앎(지각)이 있는 것이니, 너의 한 몸이 두 부처가 되어야 할 것이다. 그러므로 네가 어둠을 보는 것을 안을 보는 것이라고 한 말은 옳지 않음을 알아야 한다.”

아난이 말했다. “저는 항상 부처님께서 사부대중에게 ‘마음이 생겨나므로 여러 가지 법이 생기고, 법이 생겨나므로 여러 가지 마음이 생긴다’고 가르치시는 것을 들었습니다. 제가 이제 생각해보니, 내 생각의 본체(사유체)가 바로 제 마음의 본성(심성)인 것 같습니다. 그것이 합하는 곳에 마음이 있습니다. 안도 아니고 밖도 아니며 중간도 아닙니다.”

부처님께서 아난에게 말씀하셨다. “너는 지금 법이 생겨나므로 여러 가지 마음이 생긴다고 말한다. 마음이 합하는 곳에 있다고 하는데, 만약 이 마음이 실체(본체)가 없다면 합할 수가 없다. 만약 실체가 없는데도 합할 수 있다면, 19계가 7진과 섞여 18계가 성립된다는 것이니 이는 불가능하다. 만약 실체가 있다면, 네가 손으로 몸을 꼬집을 때, 그 느끼는 마음이 안에서 나오는 것이냐 아니면 밖에서 들어오는 것이냐? 만약 안에서 나온다면 몸 속을 보아야 하고, 밖에서 온다면 네 얼굴을 먼저 보아야 할 것이다.”

아난이 말했다. “보는 것은 눈이고, 마음은 알되 눈이 아닙니다. 본다고 말하는 것은 올바른 뜻이 아닙니다.”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만약 눈이 볼 수 있다면, 네가 방 안에 있을 때 문이 볼 수 있느냐? 또한 죽은 사람도 아직 눈이 있으니 물건을 보아야 할 것이다. 만약 물건을 본다면 어찌 죽었다고 하겠느냐?”

“아난아, 너의 깨닫고 아는 마음에 대해 말하자면, 만약 실체가 있어야 한다면, 그것은 하나의 실체냐 아니면 여러 개의 실체냐? 몸에 퍼져 있느냐 아니냐? 만약 하나의 실체라면, 네 손으로 팔다리 중 하나를 꼬집을 때 사지가 모두 느껴야 할 것이다. 만약 모두 느낀다면 꼬집은 곳이 특정되지 않는다. 만약 꼬집은 곳이 있다면 하나의 실체라는 이론은 성립되지 않는다. 만약 여러 개의 실체라면 너는 여러 사람이 되니, 어떤 실체가 너이겠느냐? 만약 몸에 퍼져 있다면 앞의 하나의 실체인 경우와 같다. 만약 퍼져 있지 않다면, 네가 머리를 만지고 동시에 발을 만질 때, 머리가 느끼면 발은 몰라야 할 것이다. 하지만 너의 경험은 그렇지 않다. 그러므로 마음이 합하는 곳에 있다는 말은 옳지 않음을 알아야 한다.”

아난이 부처님께 사뢰었다. “세존이시여, 저는 또한 부처님께서 문수사리와 다른 법왕자들과 실상(참된 모습)에 대해 논의하시는 것을 들었습니다. 세존께서도 ‘마음은 안에도 밖에도 있지 않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안으로는 아무것도 보이지 않고 밖으로는 서로 알지 못하니(분리되어 있다면), 안이 아니란 것을 알겠습니다. 몸과 마음이 서로 아니 밖이 아니란 것을 알겠습니다. 지금 서로 알면서 안으로는 보이지 않으니, 그것은 중간에 있는 것이 분명합니다.”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너는 중간에 있다고 한다. 중간이란 모호하지 않고 반드시 위치가 있어야 한다. 네가 말하는 중간은 어디냐? 특정한 곳이냐 아니면 몸이냐? 만약 몸이라면 표면을 대하는 것은 중간이 아니고, 중심에 있는 것은 안과 같다. 만약 특정한 곳이라면 표직(표시)이 있느냐 없느냐? 표직이 없다면 정해지지 않은 것이다. 왜냐하면 어떤 사람이 표직을 써서 중간을 확인하려 할 때, 동쪽에서 보면 서쪽이 되고 남쪽에서 보면 북쪽이 되기 때문이다. 표직이 혼란스러우면 마음도 혼란스러울 것이다.”

아난이 말했다. “제가 말하는 중간은 그 두 가지가 아닙니다. 세존께서 말씀하신 것처럼, 눈(근)과 형상(색)이 연하여 안식(眼識)이 생깁니다. 눈은 분별하고 형상(대상)은 지각이 없는데, 식(識)이 그 사이에서 생겨나니 마음이 그곳에 있습니다.”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만약 네 마음이 근(기관)과 경(대상) 사이에 있다면, 그 실체는 양쪽과 합하느냐 합하지 않느냐? 만약 양쪽과 합한다면, 경(대상)과 실체가 뒤섞이게 된다. 대상은 지각이 없고 본체는 지각이 있으므로, 서로 적대하여 마주보게 되는데 어찌 그것이 중간이 되겠느냐? 만약 양쪽과 합하지 않는다면, (근처럼) 아는 것도 아니고 (경처럼) 모르는 것도 아니어서 실체가 없게 된다. 그러한 중간에 무슨 특징이 있겠느냐? 그러므로 중간에 있다는 것은 옳지 않음을 알아야 한다.”

아난이 부처님께 사뢰었다. “세존이시여, 저는 예전에 4대 제자인 마하목건련, 수보리, 부루나미다라니자, 사리불과 함께 법륜을 굴리시는 것을 보았습니다. 그때 ‘깨닫고 분별하는 마음의 본성은 안도 밖도 중간도 아니며 어디에도 존재하지 않는다. 모든 것에 집착하지 않는 것을 마음이라 한다’고 자주 말씀하셨습니다. 저의 ‘집착 없음(무착)‘이 마음입니까?”

부처님께서 아난에게 말씀하셨다. “너는 깨닫고 분별하는 마음의 본성이 어디에도 없다고 말한다. 세상의 모든 것은 허공, 물, 육지, 공중을 나는 것들로 이루어져 있다. 네가 집착하지 않는다는 ‘그것’은 존재하느냐 존재하지 않느냐? 만약 존재하지 않는다면 거북이 털이나 토끼 뿔과 같은데, 어찌 ‘집착하지 않음’이 있을 수 있겠느냐? 만약 ‘집착하지 않음’이 있다면 존재하지 않는다고 말할 수 없다. ‘없음’이란 아무것도 없는 것이다. 만약 없는 것이 아니라면 상(특징)이 있는 것이다. 상이 있다면 어딘가에 위치가 있다. 어찌 ‘집착하지 않음’이라고 하겠느냐? 그러므로 모든 것에 집착하지 않는 것을 깨닫고 아는 마음이라고 하는 것은 옳지 않음을 알아야 한다.”

그때 아난이 대중 가운데 자리에서 일어나 오른쪽 어깨를 드러내고 오른쪽 무릎을 꿇고 합장하여 공경하며 부처님께 사뢰었다. “저는 여래의 막내 동생입니다. 부처님의 자애로운 사랑을 받았으나, 출가해서도 여전히 교만과 애정에 의지했습니다. 그래서 많이 배웠으나(다문), 번뇌를 다하지 못했습니다(누진통을 얻지 못함). 사비가라의 주문을 이기지 못하고 그것에 휘말려 음란한 집에 빠졌습니다. 이는 모두 제가 진실한 경계가 어디에 있는지 몰랐기 때문입니다. 오직 바라건대 세존께서 대자비를 베푸시어 우리에게 사마타의 길을 가르쳐 주시어, 모든 일천제(성불할 뜻이 없는 이)들의 악을 소멸하게 하소서.” 이렇게 말하고 오체투지하여 절하며, 대중과 함께 갈어하며 가르침을 기다렸다.

그때 세존께서 얼굴에서 갖가지 빛을 방출하시니, 수십만 개의 태양처럼 눈부셨다. 여섯 가지 진동이 불국토에 퍼지고, 시방의 미진수와 같은 국토가 일시에 나타났다. 부처님의 위신력으로 모든 세계가 합쳐져 하나의 세계가 되었다. 그 세계 속에서 모든 대보살들은 각자의 국토에 머문 채 합장하고 법문을 들었다.

부처님께서 아난에게 말씀하셨다. “모든 중생이 시작 없는 옛적부터 갖가지 전도(뒤바뀜)된 견해를 가지고 있어, 그 업의 씨앗이 자연히 악차 열매송이처럼 되었다. 수행자들이 무상보리를 얻지 못하고 대신 성문, 연각(벽지불), 혹은 외도, 천마, 마왕의 권속이 되는 것은, 두 가지 근본을 모르고 잘못 수행하기 때문이다. 마치 모래를 쪄서 밥을 만들려는 것과 같아서, 비록 미진 같은 겁을 지나도 결코 성공하지 못한다. 두 가지란 무엇인가? 아난아, 첫째는 시작 없는 생사의 근본이니, 바로 너와 모든 중생이 지금 자신의 본성이라고 여기는 ‘반연하는 마음(반연심)‘이다. 둘째는 시작 없는 보리와 열반의 본래 청정한 실체이다. 그것은 모든 조건을 만들어낼 수 있는 본래의 밝은 식정(識精)이다. 중생은 이 본래의 밝음을 잊어버렸기 때문에, 하루 종일 쓰고 있으면서도 깨닫지 못하고 잘못되어 여러 갈래 길로 들어가는 것이다.”

“아난아, 너는 이제 사마타의 길을 알고 생사를 벗어나고자 한다. 내가 지금 다시 묻겠다.” 그리고 여래는 금색 팔을 들어 다섯 손가락을 구부리며 아난에게 물으셨다. “이것이 보이느냐?”

아난이 말했다. “보입니다.”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무엇이 보이느냐?”

아난이 말했다. “여래께서 팔을 들어 손가락을 구부려 빛나는 주먹을 만드시니, 제 마음과 눈을 몹시 황홀하게 하는 것이 보입니다.”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무엇을 써서 보느냐?”

아난이 말했다. “저와 대중은 눈으로 봅니다.”

부처님께서 아난에게 말씀하셨다. “너는 여래가 손가락을 구부려 빛나는 주먹을 만들어 네 마음과 눈을 황홀하게 했다고 대답했다. 네 눈은 볼 수 있지만, 내 주먹에 의해 황홀해진 마음이란 무엇이냐?”

아난이 말했다. “여래께서 지금 저에게 마음의 소재를 힐문하십니다. 제가 추측하고 탐구하는 데 사용하는 것, 그것이 제 마음입니다.”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쯧! 아난아! 그것은 네 마음이 아니다.”

아난은 놀라 자리에서 일어나 합장하고 부처님께 사뢰었다. “이것이 제 마음이 아니라면 무엇입니까?”

부처님께서 아난에게 말씀하셨다. “이것은 밖의 대상(전진)에서 생겨나는 헛된 생각(허망상)이며, 너의 참된 성품을 미혹하게 하는 것이다. 이것 때문에 시작 없는 옛적부터 금생에 이르기까지 너는 도적을 아들로 착각하고, 본래의 상주하는 것을 잃어버리고 윤회의 수레바퀴를 겪게 된 것이다.”

아난이 부처님께 사뢰었다. “세존이시여, 저는 부처님이 사랑하시는 사촌 동생입니다. 부처님을 사랑하기 때문에 출가했습니다. 제 마음은 여래께 공양할 뿐만 아니라, 설사 항하사 수만큼 많은 국토를 돌아다니며 모든 부처님과 선지식을 섬기고, 큰 용맹을 내어 온갖 어려운 법행을 실천한다 해도 이 마음을 씁니다. 설사 법을 비방하여 영원히 선근을 잃는다 해도 그것은 이 마음 때문입니다. 만약 이 작용이 마음이 아니라면, 저는 마음이 없고 흙이나 나무와 같아집니다. 이 깨닫고 아는 것 외에는 다른 아무것도 없습니다. 어찌하여 여래께서는 이것이 마음이 아니라고 하십니까? 저는 정말 두렵고, 이 대중들도 모두 의심을 품고 있습니다. 오직 바라건대 대자비를 베푸시어, 아직 깨닫지 못한 이들을 가르쳐 주소서.”

그때 세존께서 아난과 대중을 가르쳐 그들의 마음이 무생법인(無生法忍)에 들게 하고자 하셨다. 사자좌에서 아난의 정수리를 만지시며 말씀하셨다. “여래는 항상, 생겨나는 모든 법은 단지 마음의 나타남이라고 말해왔다. 모든 인과와 세계, 심지어 티끌까지도 마음에서 그 실체를 얻는다. 아난아, 만약 여러 세계의 온갖 것들을, 심지어 풀 한 포기나 실 매듭까지 그 근본을 조사해보면 모두 실체와 성질이 있다. 허공조차도 이름과 모양이 있다. 하물며 청정하고 묘하며 밝은 마음의 본체(심정), 즉 모든 마음의 성품인 그것이 어찌 실체가 없겠느냐?”

“만약 네가 분별하는 인식을 굳이 마음이라고 고집한다면, 이 마음은 색·성·향·촉의 모든 대상과 분리되어도 그 자체의 완전한 성품이 있어야 한다. 지금 네가 내 법문을 듣는 것처럼, 이는 소리에 의존하여 분별이 생긴다. 설사 봄, 들음, 깨달음, 앎을 모두 끄고 안으로 고요함을 지킨다 해도, 그것은 여전히 법진(법의 대상)을 분별하는 그림자일 뿐이다. 나는 네가 그것이 마음이 아니라고 주장하라고 명하는 것이 아니다. 다만 너는 네 마음을 자세히 살펴보아라. 만약 외적 대상과 분리되어 분별하는 성품이 있다면, 그것은 참으로 너의 마음이다. 만약 이 분별하는 성품이 대상을 떠나 실체가 없다면, 그것은 단지 외적 대상을 분별하는 그림자에 불과하다. 대상은 영원하지 않아서, 변하고 소멸하면 이 마음은 거북이 털이나 토끼 뿔과 같이 되어 완전히 소멸할 것이다. 그러면 누가 수행하여 무생법인을 얻겠느냐?”

그때 아난과 대중은 침묵한 채 멍하니 있었다.

부처님께서 아난에게 말씀하셨다. “세상의 모든 수행자들이 비록 구차제정(아홉 단계의 선정)을 얻더라도 누진통을 얻지 못하거나 아라한이 되지 못하는 것은, 이 생사의 망상에 집착하여 그것을 진실로 착각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너는 많이 배웠으나(다문), 성과(聖果)를 얻지 못한 것이다.”

아난은 이 말을 듣고 다시 슬피 울며 오체투지하고 무릎을 꿇고 합장하며 부처님께 사뢰었다. “제가 부처님을 따라 출가한 이래로 부처님의 위신력에 의지해 왔습니다. 저는 항상 수행의 노고를 할 필요가 없다고 생각하며, 여래께서 저에게 삼매를 주실 것이라고 여겼습니다. 몸과 마음이 서로 대신할 수 없다는 것을 몰랐습니다. 저는 본래의 마음을 잃었습니다. 몸은 출가했으나 마음은 도에 들어가지 못했습니다. 저는 아버지를 버리고 도망친 방탕한 아들과 같습니다. 오늘에야 비로소 깨닫습니다. 아무리 학식이 많아도 수행하지 않으면 제대로 배우지 않은 것과 같습니다. 마치 음식 이야기를 하면서 배부르지 않는 것과 같습니다. 세존이시여, 우리는 지금 두 가지 장애에 묶여 있습니다. 이것은 전적으로 우리가 영원하고 고요한 마음의 성품을 알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오직 바라건대 여래께서 가난하고 외로운 저희를 불쌍히 여겨, 묘하고 밝은 마음을 드러내어 우리의 도안(道眼)을 열어 주소서.”

그때 여래께서 가슴의 만(卍)자에서 보배로운 광명을 뿜어내셨다. 그 빛은 눈부시고 수십만 가지 색을 띠었다. 그것은 동시에 시방의 불국토에 티끌처럼 퍼져나가 시방의 보배로운 국토에 계신 여래들의 정수리에 쏟아졌다. 그리고 다시 아난과 대중에게로 회오리쳐 돌아왔다. 부처님께서 아난에게 말씀하셨다. “내가 이제 너를 위해 ‘대법당(大法幢)‘을 세우고, 또한 시방의 모든 중생이 깊고 미묘하고 비밀스럽고 청정하고 밝은 마음을 얻어 청정한 눈(정안)을 얻게 하리라.”

“아난아, 먼저 대답해 보아라. 네가 나의 빛나는 주먹을 보았을 때 무엇이 빛을 일으켰느냐? 어떻게 주먹이 되었느냐? 본 자는 누구냐?”

아난이 말했다. “부처님의 전신은 염부단금과 같아 보배 산처럼 빛납니다. 광명은 부처님의 청정함 때문에 존재합니다. 제가 참으로 눈으로 다섯 손가락을 구부려 사람들에게 보이는 것을 관찰했으므로 주먹의 모양이 있었습니다.”

부처님께서 아난에게 말씀하셨다. “오늘 여래가 네게 진실을 말하겠다. 지혜로운 자는 비유를 통해 깨달음을 얻어야 한다. 아난아, 예를 들어 내게 손이 없다면 주먹을 쥘 수 없다. 네게 눈이 없다면 볼 수 없다. 너의 눈(안근)의 이치가 내 주먹과 같으냐?”

아난이 말했다. “그렇습니다, 세존이시여. 만약 제게 눈이 없다면 본다는 것이 성립되지 않습니다. 제 눈(안근)을 사용하여 여래의 주먹에 비유하면 그 뜻이 비슷합니다.”

부처님께서 아난에게 말씀하셨다. “너는 비슷하다고 하지만 그것은 옳지 않다. 왜냐하면 손 없는 사람이 주먹을 영원히 잃는 것과 달리, 눈 없는 사람이 보는 것을 완전히 잃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왜냐하면 길거리의 맹인에게 ‘무엇이 보이느냐?‘고 물어보아라. 그 맹인은 반드시 ‘내 앞에는 어둠만 보이고 다른 것은 보이지 않는다’고 대답할 것이다. 이 뜻을 살펴보면, 앞의 대상이 어두운 것이지 어떻게 보는 것이 줄어들었겠느냐?”

아난이 말했다. “만약 맹인이 자신의 앞의 어둠만 본다면, 어찌 본다고 할 수 있겠습니까?”

부처님께서 아난에게 말씀하셨다. “눈 없는 맹인이 보는 어둠과 눈 있는 사람이 어두운 방에서 보는 어둠이 서로 다르냐, 아니면 다르지 않으냐?”

“그렇습니다, 세존이시여. 어두운 방에 있는 사람이 보는 어둠과 맹인이 보는 어둠을 비교해보면 전혀 다름이 없습니다.”

“아난아, 만약 눈 없는 사람이 어둠만 보다가 갑자기 시력이 회복되어 여러 형상을 본다면 이를 ‘눈이 본다’고 한다. 만약 어두운 방의 사람이 어둠만 보다가 갑자기 등불이 켜져서 여러 형상을 본다면, 이는 마땅히 ‘등불이 본다’고 해야 할 것이다. 만약 등불이 본다면 등불이 시각이 있는 것이니 등불이라 할 수 없고, 또한 등불이 본다면 너와 무슨 상관이 있겠느냐? 그러므로 알아야 한다. 등불은 색을 드러낼 수 있지만 보는 것은 눈이지 등불이 아니며, 눈은 색을 드러낼 수 있지만 보는 성품(견성)은 마음이지 눈이 아니다.”

아난은 비록 이 말씀을 들었으나 그와 대중은 입을 다문 채 아직 마음이 열리지 않았다. 그들은 여전히 여래께서 자비로운 음성을 들려주시기를 바라며, 합장하고 마음을 비우고 부처님의 자비로운 가르침을 기다렸다.

그때 세존께서 솜 같은 손(兜羅綿手)을 펴서 다섯 손가락을 펴시고 아난과 대중을 가르치셨다. “내가 처음 녹야원에서 도를 이루었을 때, 아약교진여 등 5비구와 너희 사부대중에게 ‘모든 중생이 보리를 얻지 못하고 아라한이 되지 못하는 것은 객진(客塵) 번뇌에 잘못 인도되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당시 너희를 깨닫게 하여 지금 성과를 얻게 한 것은 무엇이었느냐?”

그때 교진여가 일어나 부처님께 사뢰었다. “저는 지금 대중 가운데 나이가 많은 장로로서 ‘해(解, Ajnata)‘라는 이름을 얻었습니다. 저는 ‘객(客)‘과 ‘진(塵)’ 두 글자를 깨닫고 성과를 얻었습니다. 세존이시여, 비유하자면 여행객이 숙소(여관)에 들러 잠을 자거나 밥을 먹는 것과 같습니다. 식사나 잠이 끝나면 짐을 챙겨 떠나며 편안히 머물지 않습니다. 만약 그가 진짜 주인이라면 다른 갈 곳이 없을 것입니다. 이와 같이 생각하여 머물지 않는 것을 ‘객’이라 하고, 머무는 것을 ‘주인’이라 합니다. ‘객’의 뜻은 ‘머물지 않음’입니다. 또한 비가 개고 맑은 해가 하늘에 떠오르면, 그 빛이 틈새로 들어와 허공의 모든 먼지 형상을 드러내는 것과 같습니다. 먼지는 춤추듯 움직이지만 허공은 고요합니다. 이와 같이 생각하여 맑고 고요한 것을 ‘허공’이라 하고, 움직이는 것을 ‘먼지’라 합니다. ‘먼지’의 뜻은 ‘흔들리고 움직임’입니다.”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그렇다.”

그때 여래께서 대중 가운데서 다섯 손가락을 구부리셨다. 구부린 후에는 펴시고, 펴신 후에는 다시 구부리셨다. 그리고 아난에게 물으셨다. “이제 무엇을 보느냐?”

아난이 말했다. “여래의 보배로운 손이 대중 가운데서 펴졌다 오므려졌다 하는 것을 봅니다.”

부처님께서 아난에게 말씀하셨다. “너는 내 손이 대중 가운데서 열리고 닫히는 것을 본다. 열리고 닫히는 것이 내 손이냐, 아니면 너의 보는 성품(견성)이 열리고 닫히는 것이냐?”

아난이 말했다. “세존이시여, 보배로운 손이 대중 가운데서 열리고 닫힙니다. 저는 여래의 손이 스스로 열리고 닫히는 것을 봅니다. 제 견성이 열리고 닫히는 것은 아닙니다.”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누가 움직이고 누가 고요하냐?”

아난이 말했다. “부처님의 손은 머물지 않습니다(움직입니다). 제 견성은 고요함조차 초월해 있는데, 누가 머물지 않겠습니까?”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그렇다.”

그때 여래께서 손에서 눈부신 광명을 아난의 오른쪽으로 비추셨다. 아난은 즉시 머리를 돌려 오른쪽을 보았다. 다시 아난의 왼쪽으로 광명을 비추시니, 아난은 머리를 돌려 왼쪽을 보았다.

부처님께서 아난에게 말씀하셨다. “오늘 너의 머리가 왜 움직였느냐?”

아난이 말했다. “여래께서 묘한 보배 광명을 제 왼쪽과 오른쪽으로 비추시는 것을 보았기에 왼쪽과 오른쪽을 보느라 머리가 저절로 움직였습니다.”

“아난아, 네가 부처의 광명을 보고 머리를 좌우로 움직였을 때, 너의 머리가 움직인 것이냐 아니면 보는 성품이 움직인 것이냐?”

“세존이시여, 제 머리가 스스로 움직였습니다. 제 견성은 고요함조차 초월해 있는데 누가 움직이겠습니까?”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그렇다.”

그때 여래께서 대중에게 말씀하셨다. “만약 중생이 흔들리는 것을 먼지로 여기고 머물지 않는 것을 객으로 여긴다면, 너희는 아난의 머리는 움직였으나 그의 본다는 것은 움직이지 않았음을 보았을 것이다. 또한 내 손이 열리고 닫히는 것을 보았으나, 보는 것(견성)은 늘어나거나 줄어들지 않았음을 보았다. 어찌하여 지금 너희는 움직이는 것을 자신의 몸이라 하고 움직이는 것을 자신의 환경(경계)이라 하느냐? 처음부터 끝까지 생각마다 생멸이 있다. 너희는 참된 본성을 잃고 거꾸로 행동하고 있다. 참된 마음을 잃고 외부 대상을 자신으로 인식하고 있다. 그리하여 너희는 윤회의 수레바퀴에 갇혀 있는 것이다.”

능엄경 1권 - 현대어 번역

이와 같이 나는 들었다. 한때 부처님께서 사위국 기원정사에 계셨는데, 1,250명의 큰 비구 대중과 함께 계셨다. 그들은 모두 번뇌가 다한 대아라한(大阿羅漢)으로, 불법을 유지하고 모든 존재(유)를 초월한 부처님의 제자들이었다. 그들은 모든 국토에서 위의를 갖추고 부처님을 따라 법륜을 굴리며, 불법을 부촉받기에 합당한 이들이었다. 계율이 엄정하고 청정하여 삼계의 큰 모범이 되었으며, 무한한 분신(應身)으로 중생을 제도하고 미래의 중생들을 모든 번뇌와 짐에서 구제하였다. 그들의 이름은 대지 사리불, 마하목건련, 마하구치라, 부루나미다라니자, 수보리, 우파니사타 등이며, 그들이 상수가 되었다.

아주 오랜 옛날, 사위국이라는 곳에 아름다운 기원정사가 있었습니다. 어느 날, 부처님은 그곳에서 1,250명의 제자들과 함께 계셨습니다. 이 제자들은 훌륭한 수행자들이었고, 부처님의 가르침을 따르며 다른 이들이 나아지도록 도왔습니다. 이들 중에는 지혜가 제일인 사리불, 신통력이 뛰어난 목건련, 총명한 구치라, 설법을 잘하는 부루나, 공(空)을 깊이 이해한 수보리, 그리고 우파니사타 등 뛰어난 제자들이 있었습니다. 그들은 마치 반장처럼 다른 학생들을 이끌었습니다.

또한 무수한 벽지불(辟支佛)들과 무학(無學) 및 초발심(初發心)의 수행자들이 부처님이 계신 곳에 모였다. 이때는 비구들의 하안거가 끝나는 자자(自恣)의 날이었다. 시방의 보살들은 의문을 해결하기 위해 자비롭고 엄숙하신 부처님을 공경하며 비밀한 뜻을 구하려 하였다. 그때 여래께서 자리를 정돈하고 편안히 앉으시어, 대중을 위해 심오한 도리를 선포하셨다. 법회에 참석한 청정한 대중은 미증유(未曾有)의 법을 얻었다. 가릉빈가의 목소리가 시방세계에 울러 퍼지고, 수많은 보살들이 도량에 모였으니 문수스승(문수사리)이 그들의 우두머리가 되었다.

이 날은 다른 많은 수행자들도 부처님을 찾아왔습니다. 모두가 중요한 수행 기간(하안거)을 막 마쳤기 때문에 흥분되어 있었고 부처님께 질문을 하고 싶어 했습니다. 모두가 도착한 것을 보시고 부처님은 자리에 앉아 심오한 진리를 설명할 준비를 하셨습니다. 바로 그때, 마치 모두를 환영하듯 하늘에서 아름다운 음악 소리가 들려왔습니다. 더 많은 수행자들이 사방에서 부처님의 가르침을 듣기 위해 모여들었습니다. 새로 온 사람들 중에는 문수사리라는 분이 있었는데, 그는 매우 지혜롭고 모든 이들의 존경을 받았습니다.

그때 파사익왕은 부친의 기일을 맞아 채식 요리를 준비하고 부처님을 궁전으로 청했다. 그는 진기한 음식과 최고의 맛으로 여래를 직접 맞이하고, 대보살들도 함께 청했다. 성안의 장자와 거사들도 스님들을 위해 음식을 준비하고 부처님이 오시기를 기다렸다. 부처님께서는 문수사리에게 명하여 보살들과 아라한들을 나누어 여러 재주(齋主)들에게 가게 하셨다. 오직 아난만이 일찍이 별도의 초청을 받아 멀리 갔다가 아직 돌아오지 않아 승가와 함께하지 못했다. 상좌 비구도, 아사리도 없이 홀로 돌아오는 길에 공양을 받지 못한 상태였다.

그 도시의 파사익왕은 부친을 기리기 위해 성대한 채식 연회를 준비했습니다. 그는 부처님과 다른 수행자들을 궁전으로 초대했습니다. 도시의 다른 부유한 사람들도 맛있는 음식을 준비하고 부처님을 집으로 초대하고 싶어 했습니다. 모두의 열정을 보시고 부처님은 문수사리에게 제자들을 이끌고 초대에 응하도록 하셨습니다. 하지만 아난이라는 제자는 이미 다른 초대를 받았기 때문에 무리에 없었습니다. 아난은 그날 아무것도 먹지 못해 배가 꼬르륵거리며 혼자 걸어서 돌아오고 있었습니다. 그는 속으로 “아, 모두와 함께 먹으러 갔어야 했는데"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때 아난은 발우를 들고 성안을 차례로 다니며 걸식하였다. 그는 마음속으로 가장 가난한 이로부터 공양받기를 원했는데, 그들이 깨끗하든 부정하든, 귀족(찰제리)이든 천민(전다라)이든 가리지 않았다. 그는 평등과 자비를 실천하며, 낮고 천한 이를 가리지 않고 모든 중생이 무량한 공덕을 성취하게 하려 했다. 아난은 이미 여래께서 수보리와 대가섭이 아라한이면서도 마음이 공평하지 못하다고 꾸짖으신 것을 알고 있었다. 그는 여래의 평등한 가르침을 찬탄하며 의심과 비방을 없애려 하였다. 성의 해자(垓字)를 건너 서서히 외문으로 들어가는 그의 모습은 엄숙하고 걸식의 규범을 따르고 있었다.

아난은 매우 친절한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밥그릇(발우)을 들고 성안의 집집마다 다니며 걸식했습니다. 그는 “가장 마지막 사람에게 음식을 청하고 그들을 나의 주인으로 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아난은 부자든 가난한 사람이든 상관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모든 사람이 더 나가지도록 돕고 싶었기에 누구에게나 친절했습니다. 아난은 사람을 차별해서는 안 된다는 부처님의 가르침을 기억했습니다. 그래서 그는 누구든 평등하게 대하기로 결심했습니다. 그는 탁발이 신성한 행위임을 알았기에 단정한 용모를 유지하며 조심스럽게 걸었습니다.

그때 아난은 걸식하던 중 음녀 구역을 지나다가 마등가녀의 강력한 환술에 걸리고 말았다. 그녀는 사비가라교(Kapila religion)의 범천주(Brahma Heaven Mantra)를 사용하여 그를 음란한 자리로 이끌었다. 그녀의 음탕한 몸이 그를 애무하여 계체(戒體)를 훼손하려던 찰나였다. 여래께서는 그가 음란한 술법에 해를 입고 있음을 아셨다. 식사를 마치고 즉시 돌아오신 부처님을 따라 왕과 대신, 장자, 거사들이 모두 법요를 듣고자 따랐다. 그때 세존의 정수리에서 백 가지 보배로운 광명이 뿜어져 나왔다. 광명 속에는 천 잎의 보배 연꽃이 나타나고, 그 위에 화신불(化身佛)이 결가부좌하고 앉아 신령한 주문을 선포하셨다. 부처님은 문수사리에게 그 주문을 가지고 가서 아난을 보호하라고 명하셨다. 악한 주문이 소멸되자 문수보살은 아난과 마등가녀를 부축하여 부처님이 계신 곳으로 돌아왔다.

바로 그때, 아난은 좋지 않은 동네로 들어갔습니다. 그곳에는 마법의 주문을 아는 마등가라는 소녀가 있었습니다. 그녀는 강력한 주문을 사용하여 아난을 그곳에 묶어두려 했습니다. 아난은 계율을 어길 위기에 처했습니다! 부처님은 아난이 곤경에 처했음을 아셨습니다. 식사를 마치고 왕과 다른 이들과 함께 즉시 돌아오셨습니다. 모두가 부처님의 가르침을 듣고 싶어 했습니다. 갑자기 부처님의 정수리에서 아름다운 빛이 뿜어져 나왔고, 빛 속에서 큰 연꽃이 나타났으며, 그 위에 부처님의 분신이 앉아 계셨습니다! 이 분신은 신비한 주문을 외기 시작했습니다. 부처님은 문수사리에게 이 주문을 가지고 가서 아난을 도우라고 하셨습니다. 곧 사악한 주문은 깨졌고, 아난과 마등가는 무사히 부처님께 돌아왔습니다.

아난은 부처님을 뵙자 절하고 슬피 울며, 시작 없는 옛적부터 오직 다문(多聞)에만 힘쓰고 도력(道力)을 닦지 못했음을 한탄하였다. 그는 시방의 여래들께 보리를 얻는 최초의 방편인 묘한 사마타(奢摩他), 삼마발제(三摩鉢提), 선나(禪那)를 가르쳐 주시기를 간절히 청했다. 그때 항하의 모래만큼 많은 보살들과 시방의 대아라한, 벽지불들도 법을 듣고자 하여 자리에 물러나 조용히 가르침을 기다렸다.

부처님을 뵙자 아난은 감동하여 눈물을 흘렸습니다. 그는 “부처님, 저는 항상 지식을 배우는 데만 집중하고 진심으로 수행하지 않았기에 위험에 처했습니다"라고 말했습니다. 그는 부처님께 진정한 수행자가 되는 법을 가르쳐 달라고 간청했습니다. 이때 다른 많은 수행자들도 도착하여 모두 부처님이 이 도리를 설명해주시기를 원했습니다. 모두 조용히 자리에 앉아 부처님의 가르침을 기다렸습니다.

부처님께서 아난에게 말씀하셨다. “너와 나는 같은 핏줄이라 형제의 정을 나누고 있다. 네가 처음 발심했을 때, 내 불법(佛法)에서 어떤 훌륭한 상(相)을 보았기에 세속의 깊은 은애를 갑자기 버리게 되었느냐?”

부처님과 제자 아난은 함께 앉아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부처님은 미소를 지으며 아난에게 물으셨습니다. “아난아, 우리는 가족처럼 가깝다. 말해 보아라, 너는 처음에 왜 세속의 삶을 포기하고 나를 따라 배우기로 결심했느냐?”

아난이 부처님께 사뢰었다. “저는 여래의 32상(三十二相)이 뛰어나고 묘하며 비할 데 없음을 보았습니다. 부처님의 몸은 거울처럼 맑고 투명했습니다. 저는 항상 이런 상(相)이 욕망과 애욕에서 생겨난 것이 아니라고 생각했습니다. 왜냐하면 욕망의 기운은 거칠고 탁하여 비린내와 고름, 피가 뒤섞인 것이니, 이러한 지극히 청정하고 묘하며 밝은 자금색 빛(紫金光)의 모임을 생겨나게 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저는 그것을 우러러보고 부처님을 따라 삭발하게 되었습니다.”

아난은 잠시 진지하게 생각한 뒤 대답했습니다. “부처님, 저는 당신의 32가지 특별한 상(모습)을 보았기 때문에 당신을 따랐습니다. 당신의 몸은 아름다운 수정처럼 투명하고 맑습니다. 저는 종종 그렇게 아름다운 모습은 평범한 원인으로 생겨날 수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아난은 계속 설명했습니다. “아시다시피, 보통 사람들의 몸은 온갖 부정(不淨)한 것들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하지만 당신의 몸은 금빛을 발하니 매우 특별합니다. 그래서 저는 삭발하고 당신의 제자가 되기로 결심했습니다.”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훌륭하구나, 아난아! 너희는 마땅히 알아야 한다. 모든 중생이 시작 없는 옛적부터 계속해서 생사를 반복하는 것은, 상주(常住)하는 진심(眞心)이자 성품의 청정하고 밝은 본체를 알지 못하고, 대신 망상(妄想)을 쓰기 때문이다. 이 생각이 진실하지 않기 때문에 윤회가 있는 것이다. 이제 네가 무상보리(無上菩提)를 구하여 본성을 깨닫고자 한다면, 정직한 마음으로 내 물음에 답하여라. 시방의 여래들은 모두 생사를 벗어나는 동일한 길을 가는데, 그것은 바로 정직한 마음(直心)이다. 마음과 말이 정직하면, 처음부터 끝까지 모든 단계에서 굽음이 없을 것이다.”

아난의 말을 듣고 부처님은 기뻐하며 말씀하셨습니다. “아난아, 참 잘 말했다!” 그리고 부처님은 아난에게 몇 가지 중요한 원리를 가르치기 시작하셨습니다. “아난아, 모든 생명은 아주 오래전부터 계속 윤회하고 있음을 알아야 한다. 이것은 그들이 자기 마음의 참된 본성을 이해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그들은 종종 잘못된 생각으로 세상을 바라보기 때문에 계속 윤회하는 것이다.” 부처님은 계속하셨습니다. “네가 진정으로 최고의 지혜를 이해하고 싶다면 내 다음 질문에 정직하게 답해야 한다. 모든 부처님은 정직하고 올바른 마음을 통해 윤회에서 벗어났다. 처음부터 끝까지 조금도 굽음 없이 성실함을 유지해야만 참된 수행을 할 수 있다.”

“아난아, 이제 네게 묻겠다. 네가 여래의 32상에 처음 발심했을 때, 그것을 본 것은 무엇이며, 그것을 사랑하고 기뻐한 것은 누구냐?”

부처님과 아난은 다시 자리에 앉아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부처님은 아난에게 중요한 이치를 가르치고자 물으셨습니다. “아난아, 네가 처음에 나를 따라 배우기로 결심했던 이유를 기억하느냐? 내 몸의 32가지 특별한 상을 보았기 때문이라고 했지? 그럼 말해 보아라. 너는 무엇을 사용하여 그것을 보았으며, 무엇으로 그것을 좋아했느냐?”

아난이 부처님께 사뢰었다. “세존이시여, 이 사랑하고 기뻐함은 저의 마음과 눈에서 나왔습니다. 제 눈이 여래의 뛰어난 상을 보았기 때문에, 제 마음이 사랑하고 기뻐함을 일으켰습니다. 그래서 생사를 버리기로 결심했습니다.”

아난은 잠시 생각하더니 대답했습니다. “부처님, 저는 눈으로 당신을 보았고, 마음으로 당신을 좋아했습니다. 제 눈이 당신의 특별한 모습을 보았기에 제 마음이 그것을 무척 좋아했고, 그래서 저는 윤회를 멈추기 위해 당신을 따라 배우기로 결심했습니다.”

부처님께서 아난에게 말씀하셨다. “네 말과 같이, 사랑하고 기뻐하는 진짜 원인은 네 마음과 눈에 있다. 만약 네가 마음과 눈이 어디 있는지 모른다면, 번뇌(진로)를 정복할 수 없다. 마치 도둑이 나라를 침범했을 때 왕이 군대를 보내 쫓아내려 하면, 군대는 도둑이 어디 있는지 알아야 하는 것과 같다. 네가 윤회에 흐르는 것은 마음과 눈의 허물 때문이다. 이제 묻노니, 너의 마음과 눈은 지금 어디에 있느냐?”

이 말을 듣고 부처님은 미소를 지으며 말씀하셨습니다. “아난아, 네 말이 맞다. 너는 눈으로 보고 마음으로 좋아한다. 하지만 네가 눈과 마음이 어디에 있는지 모른다면 진정으로 수행할 수 없다.” 그리고 부처님은 작은 이야기를 들어 설명하셨습니다. “마치 어떤 왕이 나쁜 사람들의 침략을 받았을 때 군대를 보내 쫓아내려 하는 것과 같다. 군대는 먼저 적들이 어디에 있는지 알아야 쫓아낼 수 있다. 마찬가지로, 네가 계속 윤회하는 이유는 바로 네 눈과 마음 때문이다.” 마지막으로 부처님은 아난에게 중요한 질문을 하셨습니다. “그러니 아난아, 말해 보아라. 지금 네 마음과 눈은 어디에 있느냐?”

아난이 부처님께 사뢰었다. “세존이시여, 세간의 열 가지 중생들은 모두 인식하는 마음(식심)이 몸 안에 있다고 여깁니다. 여래의 푸른 연꽃 같은 눈을 보아도 부처님의 얼굴에 있습니다. 지금 저의 거친 감각기관(오근)과 네 가지 감각대상(사진)을 관찰해보면 단지 제 얼굴에 있으니, 이 인식하는 마음은 본래 몸 안에 있다고 생각합니다.”

아난이 부처님께 말했습니다. “부처님, 우리 모두는 마음이 몸 안에 있다고 생각합니다. 부처님의 아름다운 푸른 눈이 얼굴에 있는 것처럼, 우리의 눈도 얼굴에 있습니다. 그러니 제 생각에 마음은 틀림없이 몸 안에 있을 것입니다.”

부처님께서 아난에게 말씀하셨다. “너는 지금 여래의 강당에 앉아 있다. 기원정사를 보아라. 어디에 있느냐?”

부처님은 듣고 미소 지으며 아난에게 물으셨습니다. “아난아, 너는 지금 강당에 앉아 있다. 말해 보아라, 기원정사는 어디에 있느냐?”

“세존이시여, 이 웅장하고 청정한 강당은 급고독원(給孤獨園) 안에 있습니다. 기원정사는 사실 강당 밖에 있습니다.”

아난이 대답했습니다. “부처님, 우리는 지금 기원정사의 이 아름다운 강당 안에 있습니다. 기원정사는 강당 밖에 있고요.”

“아난아, 강당 안에서 무엇이 먼저 보이느냐?”

부처님께서 다시 물으셨습니다. “그렇다면 네가 강당 안에 있으니 무엇이 먼저 보이느냐?”

“세존이시여, 강당 안에서는 여래가 먼저 보이고, 다음으로 대중이 보이며, 그 후에 밖을 내다보아야 숲과 정원이 보입니다.”

아난이 말했습니다. “부처님이 먼저 보이고, 그 다음 다른 사람들이 보이고, 마지막으로 밖의 숲이 보입니다.”

“아난아, 네가 숲과 정원을 볼 수 있는 이유는 무엇이냐?”

부처님은 계속 물으셨습니다. “어떻게 밖의 숲을 볼 수 있느냐?”

“세존이시여, 이 큰 강당의 문과 창문이 활짝 열려 있기 때문에 강당 안에서 멀리까지 볼 수 있는 것입니다.”

아난이 대답했습니다. “강당의 문과 창문이 열려 있어서 안에서 밖의 숲을 볼 수 있는 것입니다.”

그때 세존께서 대중 가운데서 금색 팔을 펴시어 아난의 정수리를 만지시며, 아난과 대중에게 말씀하셨다. “‘대불정 수능엄왕(大佛頂 首楞嚴王)‘이라는 삼매가 있으니, 이는 만행(萬行)을 완벽하게 갖춘 것으로, 시방의 여래들이 깨달음으로 나아가는 유일한 문이자 묘하게 장엄된 길이다. 너희는 이제 주의 깊게 들어라.” 아난은 절을 하고 겸허히 자비로운 가르침을 받들었다.

이때 부처님은 금색 팔을 뻗어 아난의 머리를 부드럽게 만지시며 아난과 대중에게 말씀하셨습니다. “‘대불정수능엄왕’이라는 아주 특별한 수행법이 있다. 이 방법은 모든 수행법을 포함하며 모든 부처님이 세상을 초월하는 데 사용하는 묘한 길이다. 아난아, 잘 들어라.” 아난은 공손히 절하며 부처님의 가르침을 진지하게 들을 준비를 했습니다.

부처님께서 아난에게 말씀하셨다. “네 말처럼 너는 강당 안에 있고, 문과 창이 열려 있어 멀리 숲과 정원을 볼 수 있다. 그렇다면 이 강당 안에 있는 자 중에 여래는 보지 못하고 강당 밖의 것만 보는 자가 있겠느냐?”

부처님은 아난과 대화를 계속하셨습니다. “아난아, 너는 방금 강당 안에 있고 열린 문과 창문을 통해 밖의 숲을 보았다고 했다. 그렇다면 이 강당 안에 있으면서 나는 보지 못하고 밖의 것만 보는 사람이 있을 수 있겠느냐?”

아난이 대답했다. “세존이시여, 강당 안에 있으면서 여래는 보지 못하고 숲과 샘물만 본다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아난은 잠시 생각하더니 고개를 저으며 말했습니다. “불가능합니다, 부처님. 강당 안에 있는데 어떻게 부처님은 보지 못하고 밖만 볼 수 있겠습니까?”

“아난아, 너도 그와 같다. 너의 정신은 맑고 또렷하다. 만약 너의 맑고 또렷한 마음이 정말로 몸 안에 있다면, 마땅히 몸 안의 것을 먼저 알아야 한다. 자신의 몸 안을 먼저 보고 나서 밖의 사물을 보는 중생이 있느냐? 심장, 간, 비장, 위장을 보지 못한다 하더라도, 적어도 손톱과 머리카락이 자라는 것, 힘줄이 움직이는 것, 맥박이 뛰는 것은 분명히 알아야 하지 않겠느냐? 어찌 모를 수 있느냐? 만약 안의 것을 모른다면, 밖의 것을 안다고 하는 것은 근거가 없다. 그러므로 너의 깨닫고 아는 마음이 몸 안에 있다는 말은 옳지 않음을 알아야 한다.”

부처님은 미소 지으며 말씀하셨습니다. “아난아, 네 생각도 그와 같다. 너는 네 마음이 몸 안에 있어서 모든 것을 안다고 한다. 만약 그게 사실이라면, 너는 네 몸 안의 것을 먼저 알고 나서 밖의 것을 알아야 한다. 자기 몸 안을 먼저 보고 나서 밖의 사물을 보는 사람이 있느냐?” 부처님은 계속하셨습니다. “설사 심장이나 간은 볼 수 없다 해도, 적어도 손톱이 자라거나 머리카락이 자라고, 근육이 움직이는 것은 알아야 하지 않겠느냐? 하지만 너는 이런 것들을 모른다. 네 몸 안에서 일어나는 일조차 모른다면 어떻게 밖의 일을 안다고 할 수 있겠느냐? 그러니 모든 것을 아는 마음이 몸 안에 살고 있다는 말은 틀린 것이다.”

아난이 절을 하고 부처님께 사뢰었다. “여래의 이런 법문을 듣고 깨달으니, 제 마음은 사실 몸 밖에 있는 것 같습니다. 왜냐하면 방 안에 켜진 등불은 먼저 방 안을 비추고 문을 통해 마당을 비추기 때문입니다. 모든 중생이 몸 안은 보지 못하고 몸 밖만 보는 것은, 마치 등불을 방 밖에 두어 방 안을 비추지 못하는 것과 같습니다. 이 이치는 확실히 명백하여 의심할 여지가 없습니다. 여래의 뜻과 같지 않습니까?”

아난은 듣고 공손히 절하며 말했습니다. “부처님, 설명을 듣고 보니 제 마음은 사실 몸 밖에 있는 것 같습니다.” 아난은 덧붙여 설명했습니다. “마치 방 안의 등불과 같습니다. 빛은 방 안을 먼저 비추고 문과 마당에 닿습니다. 하지만 우리는 몸 밖의 것만 볼 수 있고 안은 볼 수 없습니다. 이것은 등불을 방 밖에 두어 방 안을 비추지 못하는 것과 같습니다. 이제 알겠습니다. 제 생각이 부처님의 가르침과 같습니까?”

부처님께서 아난에게 말씀하셨다. “이 비구들이 방금 나를 따라 사위성에서 차례로 걸식하고 기원정사로 돌아왔다. 나는 이미 식사를 마쳤다. 비구들을 보아라. 한 사람이 먹으면 다른 이들이 배부르냐?”

부처님께서 아난에게 물으셨습니다. “아난아, 방금 몇몇 비구들이 성에서 걸식을 마치고 돌아왔다. 만약 한 비구만 먹는다면 다른 비구들도 배가 부르겠느냐?”

아난이 대답했다. “아닙니다, 세존이시여. 왜냐하면 이 비구들이 아라한이라 할지라도 몸과 생명은 각기 다르기 때문입니다. 어찌 한 사람이 먹는다고 대중이 배부르겠습니까?”

아난이 대답했습니다. “물론 아닙니다, 부처님. 사람은 각자 자신의 몸을 가지고 있습니다. 한 사람이 먹는다고 어떻게 다른 사람이 배부를 수 있겠습니까?”

부처님께서 아난에게 말씀하셨다. “만약 너의 깨닫고 알고 보는 마음이 실제로 몸 밖에 있다면, 몸과 마음은 서로 밖이 되어 연결되지 않을 것이다. 마음이 아는 것을 몸이 느끼지 못하고, 몸이 느끼는 것을 마음이 알지 못할 것이다. 내가 이제 나의 솜 같은 손(兜羅綿手)을 보여주마. 네 눈이 이것을 볼 때 마음이 분별하느냐?”

부처님은 고개를 끄덕이며 말씀하셨습니다. “아난아, 만약 네 마음이 정말 몸 밖에 있다면 몸과 마음은 분리되어야 한다. 그렇다면 마음이 아는 것을 몸은 느끼지 못하고, 몸이 느끼는 것을 마음은 알지 못할 것이다. 자, 내 손을 보여주마. 네 눈이 이것을 볼 때 네 마음이 구별할 수 있느냐?”

아난이 대답했다. “예, 세존이시여.”

아난이 말했습니다. “물론이죠, 부처님.”

부처님께서 아난에게 말씀하셨다. “서로 안다면 어찌 마음이 밖에 있겠느냐? 그러므로 너의 깨닫고 아는 마음이 몸 밖에 있다는 말은 옳지 않음을 알아야 한다.”

부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만약 눈과 마음이 함께 일할 수 있다면 어떻게 마음이 몸 밖에 있을 수 있겠느냐?”

아난이 부처님께 사뢰었다. “세존이시여, 부처님 말씀대로 안을 보지 못하니 몸 안에 있는 것이 아니고, 몸과 마음이 서로 알아 분리되지 않았으니 몸 밖에 있는 것도 아닙니다. 저는 이제 그것이 특정한 곳에 있다고 생각합니다.”

아난은 잠시 생각하더니 말했습니다. “부처님, 알겠습니다. 마음이 몸 안에 있는 것도 아니고 밖에 있는 것도 아니라면, 제 생각에 그것은 어떤 특별한 곳에 있을 것입니다.”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지금 어디에 있느냐?”

부처님께서 물으셨습니다. “그럼, 어디에 있느냐?”

아난이 말했다. “이 아는 마음은 안을 알지 못하면서 밖을 볼 수 있으니, 제 생각에는 감각기관(눈) 안에 숨어 있는 것 같습니다. 마치 누군가 수정 구슬로 눈을 가린 것과 같습니다. 물건으로 가려져 있지만 장애가 없어, 눈(근)이 보면 곧 분별이 따릅니다. 저의 깨닫고 아는 마음이 안을 보지 못하는 것은 눈(근) 안에 있기 때문이고, 밖을 장애 없이 분명히 보는 것은 눈(근) 안에 숨어 있기 때문입니다.”

아난이 대답했습니다. “제 생각에 마음은 우리 감각기관 안에 숨어 있는 것 같습니다. 마치 누군가 유리잔으로 눈을 가린 것과 같습니다. 무언가 가로막고 있지만 여전히 밖을 볼 수 있으니까요.”

부처님께서 아난에게 말씀하셨다. “네 말처럼 감각기관 안에 숨어 있는 것이 수정 구슬과 같다면, 누군가 수정 구슬로 눈을 가리고 산과 강을 볼 때, 수정 구슬도 보느냐 보지 못하느냐?”

부처님은 듣고 다시 물으셨습니다. “네 말대로라면, 누군가 유리잔으로 눈을 가렸을 때 산과 강을 볼 수 있어야 하고, 또한 유리잔도 볼 수 있어야 하지 않겠느냐?”

“그렇습니다, 세존이시여. 수정 구슬로 눈을 가린 사람은 실제로 수정 구슬을 봅니다.”

아난이 말했습니다. “그렇습니다, 부처님.”

부처님께서 아난에게 말씀하셨다. “만약 네 마음이 수정 구슬처럼 눈(근)과 결합되어 있다면, 산과 강을 볼 때 왜 눈은 보지 못하느냐? 만약 눈을 본다면 눈은 보이는 대상(경계)이 되니, 함께 보는 주체가 될 수 없다. 만약 눈을 보지 못한다면, 어찌 이 아는 마음이 수정 구슬처럼 눈(근) 안에 숨어 있다고 말할 수 있느냐? 그러므로 너의 깨닫고 아는 마음이 수정 구슬처럼 눈(근) 안에 숨어 있다는 말은 옳지 않음을 알아야 한다.”

부처님은 계속하셨습니다. “그럼, 만약 네 마음이 정말 눈을 가린 유리잔과 같다면, 왜 산과 강은 보면서 네 눈은 보지 못하느냐? 만약 네 눈을 볼 수 있다면 네 눈은 바깥의 사물처럼 되어 더 이상 너의 일부가 아닐 것이다. 만약 네 눈을 볼 수 없다면, 어떻게 마음이 감각기관 안에 숨어 있다고 할 수 있느냐?”

아난이 부처님께 사뢰었다. “세존이시여, 저는 이제 이렇게 생각합니다. 중생의 내장은 안에 있고 구멍(공규)은 밖에 있습니다. 내장이 있는 곳은 어둡고 구멍이 있는 곳은 밝습니다. 지금 제가 부처님을 마주하여 눈을 뜨고 빛을 보는 것은 밖을 보는 것이고, 눈을 감고 어둠을 보는 것은 안을 보는 것입니다. 이 뜻은 어떻습니까?”

아난은 듣고 다시 생각하더니 말했습니다. “부처님, 새로운 생각이 났습니다. 우리 몸 안(장기)에는 어두운 곳이 있고 밝은 곳(구멍)이 있습니다. 제가 눈을 뜨고 빛을 보면 밖을 보는 것이고, 눈을 감고 어둠을 보면 안을 보는 것입니다. 이게 맞습니까?”

부처님께서 아난에게 말씀하셨다. “네가 눈을 감고 어둠을 볼 때, 이 어둠이 네 눈과 마주 대하느냐, 대하지 않느냐? 만약 눈과 마주 대한다면 어둠이 눈앞에 있는 것이니, 어찌 안에 있다고 하겠느냐? 만약 안에 있다고 한다면, 해와 달, 등불이 없는 어두운 방에 있을 때 그 방 안의 어둠이 모두 너의 내장이어야 할 것이다. 만약 눈과 마주 대하지 않는다면, 본다는 것이 성립되지 않는다. 만약 밖을 떠나 안으로 마주 대하며 본다고 한다면, 눈을 감고 어둠을 보는 것을 ‘몸 안을 본다’고 하니, 눈을 뜨고 밝음을 볼 때는 왜 너의 얼굴을 보지 못하느냐? 만약 얼굴을 보지 못한다면 ‘안으로 대한다’는 것은 성립되지 않는다. 만약 얼굴을 보는 것이 성립된다면, 이 아는 마음과 눈(근)이 허공에 있는 것이니 어찌 안에 있다고 하겠느냐? 만약 허공에 있다면 너의 몸이 아니다. 그렇다면 지금 너의 얼굴을 보고 있는 여래도 너의 몸이 되어야 할 것이다. 너의 눈은 알더라도 몸은 느끼지 못할 것이다. 만약 몸과 눈이 둘 다 안다고 고집한다면 곧 두 개의 앎(지각)이 있는 것이니, 너의 한 몸이 두 부처가 되어야 할 것이다. 그러므로 네가 어둠을 보는 것을 안을 보는 것이라고 한 말은 옳지 않음을 알아야 한다.”

부처님은 미소 지으며 말씀하셨습니다. “아난아, 너는 눈을 감으면 어둠이 보인다고 했다. 이 어둠이 눈앞에 있느냐 뒤에 있느냐? 만약 앞에 있다면 어떻게 몸 안에 있다고 하겠느냐? 만약 정말 안에 있다면, 불 꺼진 어두운 방의 어둠이 다 네 내장이 되어야 하지 않겠느냐? 만약 눈앞에 없다면 어떻게 그것을 보느냐?” 부처님은 계속하셨습니다. “만약 어둠을 보는 것이 안을 보는 것이라면, 눈을 뜨고 빛을 볼 때 왜 네 얼굴은 보지 못하느냐? 만약 얼굴을 볼 수 없다면 안을 본다는 생각은 틀린 것이다. 만약 얼굴을 볼 수 있다면 네 마음과 눈은 허공에 떠 있는 것이지 몸 안에 있는 게 아니다. 허공에 있다면 네 몸의 일부가 아니다. 그러니 어둠을 보는 것이 안을 보는 것이라는 말은 틀렸다.”

아난이 말했다. “저는 항상 부처님께서 사부대중에게 ‘마음이 생겨나므로 여러 가지 법이 생기고, 법이 생겨나므로 여러 가지 마음이 생긴다’고 가르치시는 것을 들었습니다. 제가 이제 생각해보니, 내 생각의 본체(사유체)가 바로 제 마음의 본성(심성)인 것 같습니다. 그것이 합하는 곳에 마음이 있습니다. 안도 아니고 밖도 아니며 중간도 아닙니다.”

아난은 다시 생각하고 말했습니다. “부처님, 마음이 만물을 만들고 만물이 마음을 만든다고 하신 말씀이 기억납니다. 지금 생각해보니 제 마음은 바로 제 생각 그 자체인 것 같습니다. 생각이 닿는 곳에 마음이 있습니다. 안도, 밖도, 중간도 아닙니다.”

부처님께서 아난에게 말씀하셨다. “너는 지금 법이 생겨나므로 여러 가지 마음이 생긴다고 말한다. 마음이 합하는 곳에 있다고 하는데, 만약 이 마음이 실체(본체)가 없다면 합할 수가 없다. 만약 실체가 없는데도 합할 수 있다면, 19계가 7진과 섞여 18계가 성립된다는 것이니 이는 불가능하다. 만약 실체가 있다면, 네가 손으로 몸을 꼬집을 때, 그 느끼는 마음이 안에서 나오는 것이냐 아니면 밖에서 들어오는 것이냐? 만약 안에서 나온다면 몸 속을 보아야 하고, 밖에서 온다면 네 얼굴을 먼저 보아야 할 것이다.”

그러자 부처님께서 물으셨습니다. “아난아, 만약 마음이 정말 생각을 따라 어디든지 간다면, 그 마음은 모양이 있느냐 없느냐? 만약 모양이 없다면 어떻게 사물과 합칠 수 있겠느냐? 만약 모양이 있다면 손으로 만질 수 있느냐? 그것은 몸 안에서 나오느냐, 밖에서 들어오느냐?”

아난이 말했다. “보는 것은 눈이고, 마음은 알되 눈이 아닙니다. 본다고 말하는 것은 올바른 뜻이 아닙니다.”

아난이 대답했습니다. “부처님, 보는 것은 눈의 일입니다. 마음은 단지 알 뿐이지 보는 데 쓰이는 것은 아닙니다.”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만약 눈이 볼 수 있다면, 네가 방 안에 있을 때 문이 볼 수 있느냐? 또한 죽은 사람도 아직 눈이 있으니 물건을 보아야 할 것이다. 만약 물건을 본다면 어찌 죽었다고 하겠느냐?”

부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만약 눈이 정말로 본다면, 네가 방 안에 있을 때 문도 볼 수 있어야 하지 않겠느냐? 또한 죽은 사람도 여전히 눈이 있는데 왜 보지 못하느냐?”

“아난아, 너의 깨닫고 아는 마음에 대해 말하자면, 만약 실체가 있어야 한다면, 그것은 하나의 실체냐 아니면 여러 개의 실체냐? 몸에 퍼져 있느냐 아니냐? 만약 하나의 실체라면, 네 손으로 팔다리 중 하나를 꼬집을 때 사지가 모두 느껴야 할 것이다. 만약 모두 느낀다면 꼬집은 곳이 특정되지 않는다. 만약 꼬집은 곳이 있다면 하나의 실체라는 이론은 성립되지 않는다. 만약 여러 개의 실체라면 너는 여러 사람이 되니, 어떤 실체가 너이겠느냐? 만약 몸에 퍼져 있다면 앞의 하나의 실체인 경우와 같다. 만약 퍼져 있지 않다면, 네가 머리를 만지고 동시에 발을 만질 때, 머리가 느끼면 발은 몰라야 할 것이다. 하지만 너의 경험은 그렇지 않다. 그러므로 마음이 합하는 곳에 있다는 말은 옳지 않음을 알아야 한다.”

부처님께서 다시 물으셨습니다. “아난아, 만약 네 마음이 정말로 형체가 있다면, 그것은 한 덩어리냐 아니면 여러 조각이냐? 온몸을 덮고 있느냐 아니면 한 곳에만 있느냐? 만약 한 덩어리라면, 한 곳을 만질 때 온몸이 느껴야 할 것이다. 만약 여러 조각이라면 너는 여러 사람이 될 것이다. 만약 온몸을 덮고 있다면, 머리를 만질 때 발도 느껴야 할 것이다. 하지만 그렇지 않지 않느냐?”

아난이 부처님께 사뢰었다. “세존이시여, 저는 또한 부처님께서 문수사리와 다른 법왕자들과 실상(참된 모습)에 대해 논의하시는 것을 들었습니다. 세존께서도 ‘마음은 안에도 밖에도 있지 않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안으로는 아무것도 보이지 않고 밖으로는 서로 알지 못하니(분리되어 있다면), 안이 아니란 것을 알겠습니다. 몸과 마음이 서로 아니 밖이 아니란 것을 알겠습니다. 지금 서로 알면서 안으로는 보이지 않으니, 그것은 중간에 있는 것이 분명합니다.”

아난은 듣고 말했습니다. “부처님, 마음은 몸 안에도 밖에도 있지 않다고 하신 말씀이 기억납니다. 제 생각에 마음은 아마 중간쯤에 있는 것 같습니다.”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너는 중간에 있다고 한다. 중간이란 모호하지 않고 반드시 위치가 있어야 한다. 네가 말하는 중간은 어디냐? 특정한 곳이냐 아니면 몸이냐? 만약 몸이라면 표면을 대하는 것은 중간이 아니고, 중심에 있는 것은 안과 같다. 만약 특정한 곳이라면 표직(표시)이 있느냐 없느냐? 표직이 없다면 정해지지 않은 것이다. 왜냐하면 어떤 사람이 표직을 써서 중간을 확인하려 할 때, 동쪽에서 보면 서쪽이 되고 남쪽에서 보면 북쪽이 되기 때문이다. 표직이 혼란스러우면 마음도 혼란스러울 것이다.”

부처님은 미소 지으며 말씀하셨습니다. “아난아, 너는 마음이 중간에 있다고 했다. 이 중간이란 어디냐? 몸 안이냐 아니면 밖이냐? 몸 안이라면 여전히 안에 있는 것이 아니냐? 만약 밖이라면 어떻게 중간을 정하겠느냐? 마치 누군가 막대기로 중간을 표시하려 할 때, 동쪽에서 보면 서쪽이 되고 남쪽에서 보면 북쪽이 되는 것과 같다.”

아난이 말했다. “제가 말하는 중간은 그 두 가지가 아닙니다. 세존께서 말씀하신 것처럼, 눈(근)과 형상(색)이 연하여 안식(眼識)이 생깁니다. 눈은 분별하고 형상(대상)은 지각이 없는데, 식(識)이 그 사이에서 생겨나니 마음이 그곳에 있습니다.”

아난은 생각하더니 말했습니다. “부처님, 제 뜻은,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듯이 눈이 대상을 만날 때 안식(눈의 의식)이 생긴다는 것입니다. 이 의식이 바로 마음이며, 눈과 대상 사이에 존재합니다.”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만약 네 마음이 근(기관)과 경(대상) 사이에 있다면, 그 실체는 양쪽과 합하느냐 합하지 않느냐? 만약 양쪽과 합한다면, 경(대상)과 실체가 뒤섞이게 된다. 대상은 지각이 없고 본체는 지각이 있으므로, 서로 적대하여 마주보게 되는데 어찌 그것이 중간이 되겠느냐? 만약 양쪽과 합하지 않는다면, (근처럼) 아는 것도 아니고 (경처럼) 모르는 것도 아니어서 실체가 없게 된다. 그러한 중간에 무슨 특징이 있겠느냐? 그러므로 중간에 있다는 것은 옳지 않음을 알아야 한다.”

부처님께서 물으셨습니다. “만약 마음이 정말 눈과 대상 사이에 있다면, 그것은 양쪽에 속하느냐 아니면 어느 쪽에도 속하지 않느냐? 만약 양쪽에 속한다면 뒤죽박죽이 될 것이다. 만약 어느 쪽에도 속하지 않는다면 어떻게 중간에 있을 수 있겠느냐?”

아난이 부처님께 사뢰었다. “세존이시여, 저는 예전에 4대 제자인 마하목건련, 수보리, 부루나미다라니자, 사리불과 함께 법륜을 굴리시는 것을 보았습니다. 그때 ‘깨닫고 분별하는 마음의 본성은 안도 밖도 중간도 아니며 어디에도 존재하지 않는다. 모든 것에 집착하지 않는 것을 마음이라 한다’고 자주 말씀하셨습니다. 저의 ‘집착 없음(무착)‘이 마음입니까?”

아난은 듣고 말했습니다. “부처님, 마음은 안도 밖도 중간도 아니며 어디에도 존재하지 않는다고 하신 말씀이 기억납니다. 그것은 어디에도 집착하지 않습니다. 그러니 제가 마음은 집착하지 않는 것이라고 말하면 맞습니까?”

부처님께서 아난에게 말씀하셨다. “너는 깨닫고 분별하는 마음의 본성이 어디에도 없다고 말한다. 세상의 모든 것은 허공, 물, 육지, 공중을 나는 것들로 이루어져 있다. 네가 집착하지 않는다는 ‘그것’은 존재하느냐 존재하지 않느냐? 만약 존재하지 않는다면 거북이 털이나 토끼 뿔과 같은데, 어찌 ‘집착하지 않음’이 있을 수 있겠느냐? 만약 ‘집착하지 않음’이 있다면 존재하지 않는다고 말할 수 없다. ‘없음’이란 아무것도 없는 것이다. 만약 없는 것이 아니라면 상(특징)이 있는 것이다. 상이 있다면 어딘가에 위치가 있다. 어찌 ‘집착하지 않음’이라고 하겠느냐? 그러므로 모든 것에 집착하지 않는 것을 깨닫고 아는 마음이라고 하는 것은 옳지 않음을 알아야 한다.”

부처님께서 대답하셨습니다. “아난아, 네가 마음이 집착하지 않는다고 한다면, 하늘이나 땅, 물속에 있는 세상 만물이 너와 관계가 없다는 말이냐? 만약 정말 집착하지 않는다면 마음은 존재하지 않는 것이다. 마음이 존재한다면 반드시 집착이 있다. 그러니 마음이 집착하지 않는다는 말도 틀린 것이다.”

그때 아난이 대중 가운데 자리에서 일어나 오른쪽 어깨를 드러내고 오른쪽 무릎을 꿇고 합장하여 공경하며 부처님께 사뢰었다. “저는 여래의 막내 동생입니다. 부처님의 자애로운 사랑을 받았으나, 출가해서도 여전히 교만과 애정에 의지했습니다. 그래서 많이 배웠으나(다문), 번뇌를 다하지 못했습니다(누진통을 얻지 못함). 사비가라의 주문을 이기지 못하고 그것에 휘말려 음란한 집에 빠졌습니다. 이는 모두 제가 진실한 경계가 어디에 있는지 몰랐기 때문입니다. 오직 바라건대 세존께서 대자비를 베푸시어 우리에게 사마타의 길을 가르쳐 주시어, 모든 일천제(성불할 뜻이 없는 이)들의 악을 소멸하게 하소서.” 이렇게 말하고 오체투지하여 절하며, 대중과 함께 갈어하며 가르침을 기다렸다.

이 말을 듣고 아난은 마침내 자신의 생각이 잘못되었음을 깨달았습니다. 그는 일어나 부처님께 공손히 말했습니다. “부처님, 저는 당신의 막내 동생으로 사랑을 받았지만, 지혜가 부족합니다. 비록 많이 배웠지만 아직 참모습을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부디 자비로써 저희에게 올바른 수행법을 가르쳐 주십시오.” 말을 마친 아난과 대중은 무릎을 꿇고 부처님의 가르침을 기다렸습니다.

그때 세존께서 얼굴에서 갖가지 빛을 방출하시니, 수십만 개의 태양처럼 눈부셨다. 여섯 가지 진동이 불국토에 퍼지고, 시방의 미진수와 같은 국토가 일시에 나타났다. 부처님의 위신력으로 모든 세계가 합쳐져 하나의 세계가 되었다. 그 세계 속에서 모든 대보살들은 각자의 국토에 머문 채 합장하고 법문을 들었다.

바로 그때, 부처님의 얼굴에서 아름다운 빛이 뿜어져 나와 온 세상을 비추었습니다. 모든 보살들이 조용히 귀를 기울이며 부처님의 가르침을 기다렸습니다.

부처님께서 아난에게 말씀하셨다. “모든 중생이 시작 없는 옛적부터 갖가지 전도(뒤바뀜)된 견해를 가지고 있어, 그 업의 씨앗이 자연히 악차 열매송이처럼 되었다. 수행자들이 무상보리를 얻지 못하고 대신 성문, 연각(벽지불), 혹은 외도, 천마, 마왕의 권속이 되는 것은, 두 가지 근본을 모르고 잘못 수행하기 때문이다. 마치 모래를 쪄서 밥을 만들려는 것과 같아서, 비록 미진 같은 겁을 지나도 결코 성공하지 못한다. 두 가지란 무엇인가? 아난아, 첫째는 시작 없는 생사의 근본이니, 바로 너와 모든 중생이 지금 자신의 본성이라고 여기는 ‘반연하는 마음(반연심)‘이다. 둘째는 시작 없는 보리와 열반의 본래 청정한 실체이다. 그것은 모든 조건을 만들어낼 수 있는 본래의 밝은 식정(識精)이다. 중생은 이 본래의 밝음을 잊어버렸기 때문에, 하루 종일 쓰고 있으면서도 깨닫지 못하고 잘못되어 여러 갈래 길로 들어가는 것이다.”

부처님께서 아난에게 말씀하셨습니다. “아난아, 모든 생명은 아주 오래전부터 잘못된 짓을 저질러 왔는데, 마치 엉킨 구슬 끈이 점점 더 조여드는 것과 같다. 많은 사람들이 수행하고 싶어 하지만 잘못된 길로 들어선다. 이는 모래로 밥을 지으려는 것과 같아서, 아무리 오래 끓여도 밥이 되지 않는다.” 부처님은 계속 설명하셨습니다. “이는 그들이 두 가지 중요한 진리를 모르기 때문이다. 첫째는 우리가 대상을 붙잡는 데 쓰는 마음이고, 둘째는 우리의 본래 청정한 본성이다. 이 두 가지를 모르기 때문에 사람들은 매일 열심히 노력해도 올바른 방향을 찾지 못하는 것이다.”

“아난아, 너는 이제 사마타의 길을 알고 생사를 벗어나고자 한다. 내가 지금 다시 묻겠다.” 그리고 여래는 금색 팔을 들어 다섯 손가락을 구부리며 아난에게 물으셨다. “이것이 보이느냐?”

부처님께서 부드럽게 말씀하셨습니다. “아난아, 네가 해탈의 길을 알고 윤회에서 벗어나고 싶어 한다는 것을 안다. 이제 다시 묻겠다.” 이렇게 말씀하시며 부처님은 천천히 금색 팔을 들어 다섯 손가락을 구부리셨습니다. 그리고 부드럽게 물으셨습니다. “아난아, 지금 무엇이 보이느냐?”

아난이 말했다. “보입니다.”

아난이 즉시 대답했습니다. “보입니다, 부처님.”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무엇이 보이느냐?”

부처님께서 다시 물으셨습니다. “그렇다면 정확히 무엇이 보이느냐?”

아난이 말했다. “여래께서 팔을 들어 손가락을 구부려 빛나는 주먹을 만드시니, 제 마음과 눈을 몹시 황홀하게 하는 것이 보입니다.”

아난은 자세히 살펴보고 대답했습니다. “부처님, 당신이 팔을 들고 손가락을 구부리는 것이 보입니다. 당신의 손은 빛나는 주먹 같아서 제 눈과 마음을 비춥니다.”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무엇을 써서 보느냐?”

부처님께서 다시 물으셨습니다. “누가 보고 있느냐?”

아난이 말했다. “저와 대중은 눈으로 봅니다.”

아난이 말했습니다. “저와 모두가 눈으로 봅니다.”

부처님께서 아난에게 말씀하셨다. “너는 여래가 손가락을 구부려 빛나는 주먹을 만들어 네 마음과 눈을 황홀하게 했다고 대답했다. 네 눈은 볼 수 있지만, 내 주먹에 의해 황홀해진 마음이란 무엇이냐?”

“아난아, 너는 방금 내가 손가락을 구부려 빛나는 주먹을 만드는 것을 보았고, 그 빛이 네 눈과 마음을 비춘다고 말했다. 지금 묻노니, 네 눈이 내 주먹을 볼 수 있는 것은 분명하다. 하지만 네가 말하는 ‘마음’이란 무엇이냐? 내 주먹에 의해 비춰진 ‘마음’이란 어떤 것이냐?”

아난이 말했다. “여래께서 지금 저에게 마음의 소재를 힐문하십니다. 제가 추측하고 탐구하는 데 사용하는 것, 그것이 제 마음입니다.”

아난은 생각하더니 말했습니다. “저는 마음을 사용해 느끼고 생각하니, 느끼는 것이 바로 제 마음인 것 같습니다.”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쯧! 아난아! 그것은 네 마음이 아니다.”

부처님은 고개를 저으며 말씀하셨습니다. “아난아, 그것은 네 진정한 마음이 아니다.”

아난은 놀라 자리에서 일어나 합장하고 부처님께 사뢰었다. “이것이 제 마음이 아니라면 무엇입니까?”

아난은 깜짝 놀라 일어 서서 물었습니다. “이것이 제 마음이 아니라면 무엇입니까?”

부처님께서 아난에게 말씀하셨다. “이것은 밖의 대상(전진)에서 생겨나는 헛된 생각(허망상)이며, 너의 참된 성품을 미혹하게 하는 것이다. 이것 때문에 시작 없는 옛적부터 금생에 이르기까지 너는 도적을 아들로 착각하고, 본래의 상주하는 것을 잃어버리고 윤회의 수레바퀴를 겪게 된 것이다.”

부처님께서 설명하셨습니다. “이것은 단지 너의 상상이며, 가짜이다. 옛날부터 지금까지 너는 이 가짜를 진짜로 여겨왔으니, 마치 도둑을 자기 자식으로 여기는 것과 같다. 이 실수 때문에 너는 윤회 속에서 고통받고 있는 것이다.”

아난이 부처님께 사뢰었다. “세존이시여, 저는 부처님이 사랑하시는 사촌 동생입니다. 부처님을 사랑하기 때문에 출가했습니다. 제 마음은 여래께 공양할 뿐만 아니라, 설사 항하사 수만큼 많은 국토를 돌아다니며 모든 부처님과 선지식을 섬기고, 큰 용맹을 내어 온갖 어려운 법행을 실천한다 해도 이 마음을 씁니다. 설사 법을 비방하여 영원히 선근을 잃는다 해도 그것은 이 마음 때문입니다. 만약 이 작용이 마음이 아니라면, 저는 마음이 없고 흙이나 나무와 같아집니다. 이 깨닫고 아는 것 외에는 다른 아무것도 없습니다. 어찌하여 여래께서는 이것이 마음이 아니라고 하십니까? 저는 정말 두렵고, 이 대중들도 모두 의심을 품고 있습니다. 오직 바라건대 대자비를 베푸시어, 아직 깨닫지 못한 이들을 가르쳐 주소서.”

부처님의 말씀을 듣고 아난은 깊은 혼란에 빠졌습니다. 그는 잠시 생각한 뒤 공손히 부처님께 대답했습니다. “세존이시여, 저는 당신의 가장 사랑하는 제자입니다. 제 마음이 불법을 사랑했기에 당신께서 저의 출가를 허락하셨습니다. 제 마음은 당신을 섬기는 데 쓰일 뿐만 아니라, 다음을 위해서도 쓰입니다.”

  • 수많은 국토를 두루 다니며
  • 모든 부처님과 선지식을 섬기고
  • 큰 용기를 내어
  • 갖가지 어려운 수행을 실천하는 것

이 모든 것이 이 마음으로 행해집니다. 설사 제가 때로는 불법을 비방하고 선근을 잃는다 해도, 그것은 이 마음 때문입니다.”

“만약 이것이 마음이 아니라고 하신다면, 저는 마음이 없는 사람이 되어 나무나 돌과 다를 바가 없게 됩니다. 이 아는 마음을 떠나서는 제게 아무것도 없습니다. 왜 이것이 마음이 아니라고 하십니까?”

“저는 정말로 두렵고, 여기 있는 모든 이들도 혼란스러워할 것이라 생각합니다. 간절히 청하오니, 대자비를 베푸시어 이해하지 못하는 저희들의 의문을 풀어 주십시오.”

그때 세존께서 아난과 대중을 가르쳐 그들의 마음이 무생법인(無生法忍)에 들게 하고자 하셨다. 사자좌에서 아난의 정수리를 만지시며 말씀하셨다. “여래는 항상, 생겨나는 모든 법은 단지 마음의 나타남이라고 말해왔다. 모든 인과와 세계, 심지어 티끌까지도 마음에서 그 실체를 얻는다. 아난아, 만약 여러 세계의 온갖 것들을, 심지어 풀 한 포기나 실 매듭까지 그 근본을 조사해보면 모두 실체와 성질이 있다. 허공조차도 이름과 모양이 있다. 하물며 청정하고 묘하며 밝은 마음의 본체(심정), 즉 모든 마음의 성품인 그것이 어찌 실체가 없겠느냐?”

아난의 혼란스러움을 듣고 부처님은 아난과 대중을 더 가르치기로 하셨습니다. 부처님은 그들의 마음이 ‘생겨나지 않고 멸하지 않는 이치’(무생법인)를 깨닫는 경지로 이끌기를 바라셨습니다.

부처님은 장엄한 사자좌에 앉아 아난의 머리를 자애롭게 만지시며 부드럽게 말씀하셨습니다. “아난아, 기억하거라. 나는 항상 모든 현상이 마음의 작용일 뿐이라고 가르쳐 왔다. 온 세상, 가장 큰 인과관계에서부터 가장 작은 먼지 티끌까지, 모든 것이 마음 때문에 존재한다.”

“예를 들어보자. 세상의 모든 것, 심지어 작은 풀 한 포기나 얇은 실 매듭조차도 그 기원을 따져보면 각기 고유한 본질과 특징이 있다. 보이지도 만져지지도 않는 허공조차도 이름이 있고 설명할 수 있다.”

“그렇다면 반대로 생각해보라. 우리의 마음은 이토록 청정하고 오묘하며 모든 것을 알 수 있는데, 어찌 그 자체의 실체가 없겠느냐?”

“만약 네가 분별하는 인식을 굳이 마음이라고 고집한다면, 이 마음은 색·성·향·촉의 모든 대상과 분리되어도 그 자체의 완전한 성품이 있어야 한다. 지금 네가 내 법문을 듣는 것처럼, 이는 소리에 의존하여 분별이 생긴다. 설사 봄, 들음, 깨달음, 앎을 모두 끄고 안으로 고요함을 지킨다 해도, 그것은 여전히 법진(법의 대상)을 분별하는 그림자일 뿐이다. 나는 네가 그것이 마음이 아니라고 주장하라고 명하는 것이 아니다. 다만 너는 네 마음을 자세히 살펴보아라. 만약 외적 대상과 분리되어 분별하는 성품이 있다면, 그것은 참으로 너의 마음이다. 만약 이 분별하는 성품이 대상을 떠나 실체가 없다면, 그것은 단지 외적 대상을 분별하는 그림자에 불과하다. 대상은 영원하지 않아서, 변하고 소멸하면 이 마음은 거북이 털이나 토끼 뿔과 같이 되어 완전히 소멸할 것이다. 그러면 누가 수행하여 무생법인을 얻겠느냐?”

부처님은 계속해서 아난에게 인내심을 가지고 부드럽지만 단호한 어조로 설명하셨습니다. “아난아, 만약 네가 분별하고 생각하고 아는 것을 진짜 마음이라고 고집한다면, 곰곰이 따져보자. 만약 이것이 진짜 마음이라면, 모든 외부 자극과 독립적으로 존재할 수 있어야 하지 않겠느냐?”

“예를 들어, 지금 너는 내 가르침을 듣고 있고, 소리를 듣기 때문에 이해와 분별이 일어난다. 만약 네가 보는 것, 듣는 것, 느끼는 것, 아는 것을 멈추고 내면의 마음을 고요히 지킨다 해도, 마음속에 떠오르는 갖가지 생각과 이미지는 여전히 외부 자극에 의해 만들어진 것이다.”

“나는 이것이 마음이 아니라고 강요하는 것이 아니다. 단지 네가 더 신중하게 생각하기를 바란다. 만약 외부 자극과 떨어져서도 네 마음이 여전히 존재하고 분별할 수 있다면, 그것이 바로 너의 진짜 마음이다.”

“하지만 만약 외부 자극 없이 분별하는 능력이 사라진다면, 이 분별심은 단지 외부 자극이 마음에 만들어낸 이미지일 뿐이다. 외부 사물은 끊임없이 변한다. 만약 그것들이 사라지면, 그것에 의존하던 마음도 사라지지 않겠느냐? 이것은 마치 거북이 털이나 토끼 뿔처럼 존재하지 않는 것이다.”

“그렇다면 너의 본질도 완전히 사라질 텐데, 누가 수행하여 생사를 초월한 경지를 깨닫겠느냐?”

그때 아난과 대중은 침묵한 채 멍하니 있었다.

아난과 모든 사람들은 듣고 침묵에 빠졌으며,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몰랐습니다.

부처님께서 아난에게 말씀하셨다. “세상의 모든 수행자들이 비록 구차제정(아홉 단계의 선정)을 얻더라도 누진통을 얻지 못하거나 아라한이 되지 못하는 것은, 이 생사의 망상에 집착하여 그것을 진실로 착각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너는 많이 배웠으나(다문), 성과(聖果)를 얻지 못한 것이다.”

부처님께서 다시 말씀하셨습니다. “세상의 많은 수행자들이 비록 높은 단계의 선정에 도달한다 해도 여전히 번뇌를 완전히 없애지 못한다. 이는 가짜를 진짜로 착각하기 때문이다. 아난아, 너는 많이 배웠지만 아직 진정으로 깨닫지 못했다.”

아난은 이 말을 듣고 다시 슬피 울며 오체투지하고 무릎을 꿇고 합장하며 부처님께 사뢰었다. “제가 부처님을 따라 출가한 이래로 부처님의 위신력에 의지해 왔습니다. 저는 항상 수행의 노고를 할 필요가 없다고 생각하며, 여래께서 저에게 삼매를 주실 것이라고 여겼습니다. 몸과 마음이 서로 대신할 수 없다는 것을 몰랐습니다. 저는 본래의 마음을 잃었습니다. 몸은 출가했으나 마음은 도에 들어가지 못했습니다. 저는 아버지를 버리고 도망친 방탕한 아들과 같습니다. 오늘에야 비로소 깨닫습니다. 아무리 학식이 많아도 수행하지 않으면 제대로 배우지 않은 것과 같습니다. 마치 음식 이야기를 하면서 배부르지 않는 것과 같습니다. 세존이시여, 우리는 지금 두 가지 장애에 묶여 있습니다. 이것은 전적으로 우리가 영원하고 고요한 마음의 성품을 알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오직 바라건대 여래께서 가난하고 외로운 저희를 불쌍히 여겨, 묘하고 밝은 마음을 드러내어 우리의 도안(道眼)을 열어 주소서.”

부처님의 가르침을 듣고 아난은 크게 흔들렸습니다. 그는 슬피 울며 땅에 엎드려 무릎을 꿇고 합장하며 부처님께 진심을 털어놓았습니다. “세존이시여, 제가 당신을 따라 출가한 뒤로 항상 당신의 보호에 의지했습니다. 저는 당신만 따르면 스스로 힘들게 수행할 필요 없이 당신께서 삼매의 지혜를 주실라라 생각했습니다. 이제야 몸과 마음은 대신해 줄 수 없음을 깨달았습니다. 제 몸은 출가했으나 마음은 진정으로 수행의 경지에 들어가지 못했습니다.”

“저는 마치 아버지를 버리고 도망친 가난한 아이와 같습니다. 오늘에야 비로소 아무리 지식이 많아도 실천하지 않으면 아무것도 모르는 것과 같음을 깨달았습니다. 마치 맛있는 음식 이야기만 하고 배부르지 않는 것과 같습니다.”

“세존이시여, 우리는 영원하고 고요한 마음의 본성을 모르기 때문에 두 가지 장애에 묶여 있습니다. 부디 저희 같은 불쌍한 이들을 가엾게 여기시어, 그 묘하고 밝은 마음을 열고 지혜의 눈을 뜨게 도와주십시오.”

아난의 말은 자책과 깨달음으로 가득 찼습니다. 그는 마침내 진정한 수행은 타인에게 의존할 수 없으며 스스로 실천해야 함을 깨달았습니다. 그는 부처님의 지도를 간청하며 마음의 본성을 진정으로 이해하고 참된 수행의 길로 들어서기를 희망했습니다. 이것은 아난의 영적 성장에 있어 중요한 전환점이 되었습니다.

그때 여래께서 가슴의 만(卍)자에서 보배로운 광명을 뿜어내셨다. 그 빛은 눈부시고 수십만 가지 색을 띠었다. 그것은 동시에 시방의 불국토에 티끌처럼 퍼져나가 시방의 보배로운 국토에 계신 여래들의 정수리에 쏟아졌다. 그리고 다시 아난과 대중에게로 회오리쳐 돌아왔다. 부처님께서 아난에게 말씀하셨다. “내가 이제 너를 위해 ‘대법당(大法幢)‘을 세우고, 또한 시방의 모든 중생이 깊고 미묘하고 비밀스럽고 청정하고 밝은 마음을 얻어 청정한 눈(정안)을 얻게 하리라.”

아난이 지도를 구하자 놀라운 광경이 펼쳐졌습니다. 부처님 가슴의 만(卍)자가 갑자기 눈부신 빛을 뿜어냈습니다. 이 빛은 평범한 빛이 아니었습니다. 수십만 가지의 찬란한 색으로 번쩍이며 놀랍도록 아름다웠습니다.

이 신비한 빛은 순식간에 퍼져나가 시방의 모든 불국토를 비췄습니다. 빛은 먼저 그 국토에 계신 모든 부처님의 정수리에 쏟아지고, 다시 회오리쳐서 아난과 그 자리에 있는 모든 이들에게 돌아왔습니다.

그리고 부처님께서 아난에게 말씀하셨습니다. “아난아, 내가 이제 너를 위해 거대한 법당(大法幢, 진리의 깃발)을 세우겠다. 이것은 너뿐만 아니라 시방의 모든 중생을 위한 것이다. 너희가 미묘하고 비밀스럽고 청정하고 밝은 마음을 얻어 맑고 깨끗한 지혜의 눈을 갖게 돕고자 한다.”

부처님의 말씀은 자비와 힘으로 가득 찼습니다. ‘법당’은 거대한 깃발과 같아서 불법의 장엄함과 위대함을 상징합니다. 부처님은 이 법당을 통해 모두가 마음의 본성을 이해하고 참된 지혜를 얻도록 돕고자 하셨습니다.

“아난아, 먼저 대답해 보아라. 네가 나의 빛나는 주먹을 보았을 때 무엇이 빛을 일으켰느냐? 어떻게 주먹이 되었느냐? 본 자는 누구냐?”

부처님께서 아난에게 물으셨습니다. “방금 내 주먹이 빛나는 것을 보았지. 그 빛은 어디서 왔다고 생각하느냐? 왜 주먹처럼 보였느냐? 그것을 보고 있던 자는 누구냐?”

아난이 말했다. “부처님의 전신은 염부단금과 같아 보배 산처럼 빛납니다. 광명은 부처님의 청정함 때문에 존재합니다. 제가 참으로 눈으로 다섯 손가락을 구부려 사람들에게 보이는 것을 관찰했으므로 주먹의 모양이 있었습니다.”

아난이 대답했습니다. “부처님의 몸이 금처럼 빛나고 손가락을 주먹으로 쥐셨기 때문에, 저는 빛나는 주먹을 보았습니다.”

부처님께서 아난에게 말씀하셨다. “오늘 여래가 네게 진실을 말하겠다. 지혜로운 자는 비유를 통해 깨달음을 얻어야 한다. 아난아, 예를 들어 내게 손이 없다면 주먹을 쥘 수 없다. 네게 눈이 없다면 볼 수 없다. 너의 눈(안근)의 이치가 내 주먹과 같으냐?”

부처님은 미소를 지으며 말씀하셨습니다. “아난아, 간단한 비유로 설명해 주마. 내게 손이 없다면 주먹도 없겠지? 마찬가지로 네게 눈이 없다면 볼 수 없다. 이 비유가 맞다고 생각하느냐?”

아난이 말했다. “그렇습니다, 세존이시여. 만약 제게 눈이 없다면 본다는 것이 성립되지 않습니다. 제 눈(안근)을 사용하여 여래의 주먹에 비유하면 그 뜻이 비슷합니다.”

아난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습니다. “네, 부처님. 눈이 없다면 볼 수 없겠지요. 주먹 비유와 아주 비슷합니다.”

부처님께서 아난에게 말씀하셨다. “너는 비슷하다고 하지만 그것은 옳지 않다. 왜냐하면 손 없는 사람이 주먹을 영원히 잃는 것과 달리, 눈 없는 사람이 보는 것을 완전히 잃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왜냐하면 길거리의 맹인에게 ‘무엇이 보이느냐?‘고 물어보아라. 그 맹인은 반드시 ‘내 앞에는 어둠만 보이고 다른 것은 보이지 않는다’고 대답할 것이다. 이 뜻을 살펴보면, 앞의 대상이 어두운 것이지 어떻게 보는 것이 줄어들었겠느냐?”

부처님은 아난을 자애롭게 바라보며 심오한 이치를 설명하기 시작하셨습니다. “아난아, 네가 방금 든 비유는 적절하지 않다. 왜 그런지 설명해 주마.”

“손이 없는 사람은 절대 주먹을 쥘 수 없겠지? 하지만 눈이 없는 사람이라 해서 ‘보는’ 능력을 완전히 잃은 것은 아니다.”

“믿기지 않느냐? 작은 실험을 해보자. 길에서 맹인을 만나 ‘무엇이 보이십니까?‘라고 묻는다고 상상해라. 그 맹인은 아마 이렇게 대답할 것이다:”

“‘내 앞에는 어둠만 보이고 아무것도 보이지 않습니다.’”

부처님은 계속하셨습니다. “보아라, 맹인도 어둠을 ‘볼’ 수 있다. 이것은 무엇을 말해주는가? 외부 대상(전진) 자체가 어두울 뿐이지, ‘보는’ 능력 자체가 손상된 것은 아니라는 뜻이다.”

“그러니 아난아, 너는 알아야 한다. ‘보는’ 것의 본질은 외부 사물에 의존하지 않는다. 어둠 속에서도 ‘보는’ 능력은 여전히 존재한다.”

아난이 말했다. “만약 맹인이 자신의 앞의 어둠만 본다면, 어찌 본다고 할 수 있겠습니까?”

아난은 혼란스러워하며 물었습니다. “하지만 맹인은 어둠만 봅니다. 그것도 본다고 할 수 있습니까?”

부처님께서 아난에게 말씀하셨다. “눈 없는 맹인이 보는 어둠과 눈 있는 사람이 어두운 방에서 보는 어둠이 서로 다르냐, 아니면 다르지 않으냐?”

부처님께서 설명하셨습니다. “아난아, 눈이 있는 사람이 어두운 방에서 맹인 옆에 서 있다고 상상해 보라. 그들이 보는 어둠에 차이가 있겠느냐?”

“그렇습니다, 세존이시여. 어두운 방에 있는 사람이 보는 어둠과 맹인이 보는 어둠을 비교해보면 전혀 다름이 없습니다.”

아난은 잠시 생각하고 말했습니다. “맞습니다, 부처님. 그들이 보는 어둠은 같습니다.”

“아난아, 만약 눈 없는 사람이 어둠만 보다가 갑자기 시력이 회복되어 여러 형상을 본다면 이를 ‘눈이 본다’고 한다. 만약 어두운 방의 사람이 어둠만 보다가 갑자기 등불이 켜져서 여러 형상을 본다면, 이는 마땅히 ‘등불이 본다’고 해야 할 것이다. 만약 등불이 본다면 등불이 시각이 있는 것이니 등불이라 할 수 없고, 또한 등불이 본다면 너와 무슨 상관이 있겠느냐? 그러므로 알아야 한다. 등불은 색을 드러낼 수 있지만 보는 것은 눈이지 등불이 아니며, 눈은 색을 드러낼 수 있지만 보는 성품(견성)은 마음이지 눈이 아니다.”

부처님은 계속하셨습니다. “자, 맹인에게 눈을 주거나 어두운 방에 등불을 켜면 그들은 여러 가지 색을 볼 수 있다. 하지만 등불이 본다고 할 수는 없지 않느냐? 등불은 우리가 색을 볼 수 있게 해줄 뿐, 진짜 보는 것은 눈이다. 마찬가지로 눈은 우리가 색을 볼 수 있게 해주지만, 진짜 보는 것은 우리의 마음(견성)이다.”

아난은 비록 이 말씀을 들었으나 그와 대중은 입을 다문 채 아직 마음이 열리지 않았다. 그들은 여전히 여래께서 자비로운 음성을 들려주시기를 바라며, 합장하고 마음을 비우고 부처님의 자비로운 가르침을 기다렸다.

아난과 대중은 부처님의 말씀을 들었지만 여전히 완전히 이해하지는 못했습니다. 그들은 부처님께서 다시 설명해 주시기를 바라며 조용히 기다렸습니다.

그때 세존께서 솜 같은 손(兜羅綿手)을 펴서 다섯 손가락을 펴시고 아난과 대중을 가르치셨다. “내가 처음 녹야원에서 도를 이루었을 때, 아약교진여 등 5비구와 너희 사부대중에게 ‘모든 중생이 보리를 얻지 못하고 아라한이 되지 못하는 것은 객진(客塵) 번뇌에 잘못 인도되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당시 너희를 깨닫게 하여 지금 성과를 얻게 한 것은 무엇이었느냐?”

그때 부처님은 손을 내미셨습니다. 손바닥에는 마치 고운 그물과 같은 특별한 무늬가 있었습니다. 부처님은 다섯 손가락을 펴셨는데, 단순한 몸짓이었지만 위엄과 지혜가 가득 차 있었습니다. 부처님은 아난과 대중에게 말씀하셨습니다.

“과거를 돌아보자. 내가 처음 녹야원에서 깨달음을 얻었을 때, 아약교진여와 다섯 비구, 그리고 너희 사부대중에게 했던 말을 기억하느냐? 그때 나는 이렇게 말했다.”

“모든 중생이 보리(무상정등각)를 얻지 못하고 아라한(해탈한 성자)이 되지 못하는 이유는 ‘객진(손님과 먼지)’ 번뇌에 잘못 인도되었기 때문이다.”

부처님은 잠시 멈추고 물으셨습니다. “당시 너희를 깨닫게 하여 오늘날 성과를 얻게 한 것은 무엇이었느냐?”

부처님은 아난과 대중이 자신의 수행 과정을 되돌아보도록 이 질문을 하셨습니다. 우리의 번뇌와 혼란은 떠도는 먼지와 같을 뿐, 우리의 진정한 본성이 아니라는 중요한 이치를 이해하도록 돕고자 하신 것입니다.

이 비유는 매우 생생합니다. 마치 깨끗한 거울이 모든 것을 있는 그대로 비추지만, 먼지가 덮이면 흐려지는 것과 같습니다. 마찬가지로 우리의 마음은 본래 청정하여 모든 진리를 알 수 있지만, 번뇌와 혼란에 가려져 사물의 본질을 보지 못하는 것입니다.

부처님의 말씀은 모두에게 생각할 거리를 주었습니다. 어떻게 하면 우리 마음의 먼지를 닦아내고 본래의 청정한 마음을 회복할 수 있을까요? 이것이 수행의 핵심입니다.

그때 교진여가 일어나 부처님께 사뢰었다. “저는 지금 대중 가운데 나이가 많은 장로로서 ‘해(解, Ajnata)‘라는 이름을 얻었습니다. 저는 ‘객(客)‘과 ‘진(塵)’ 두 글자를 깨닫고 성과를 얻었습니다. 세존이시여, 비유하자면 여행객이 숙소(여관)에 들러 잠을 자거나 밥을 먹는 것과 같습니다. 식사나 잠이 끝나면 짐을 챙겨 떠나며 편안히 머물지 않습니다. 만약 그가 진짜 주인이라면 다른 갈 곳이 없을 것입니다. 이와 같이 생각하여 머물지 않는 것을 ‘객’이라 하고, 머무는 것을 ‘주인’이라 합니다. ‘객’의 뜻은 ‘머물지 않음’입니다. 또한 비가 개고 맑은 해가 하늘에 떠오르면, 그 빛이 틈새로 들어와 허공의 모든 먼지 형상을 드러내는 것과 같습니다. 먼지는 춤추듯 움직이지만 허공은 고요합니다. 이와 같이 생각하여 맑고 고요한 것을 ‘허공’이라 하고, 움직이는 것을 ‘먼지’라 합니다. ‘먼지’의 뜻은 ‘흔들리고 움직임’입니다.”

부처님의 질문을 듣고 장로 교진여가 일어났습니다. 그는 다섯 비구 중 가장 먼저 깨달음을 얻은 분으로, 자신의 깨달음을 부처님께 설명하고자 했습니다. 교진여는 공손하게 말했습니다.

“세존이시여, 저는 운 좋게도 대중 가운데 가장 먼저 ‘깨달은 자(Ajnata)‘라는 칭호를 얻었습니다. 이는 제가 ‘객(손님)‘과 ‘진(먼지)‘이라는 두 글자의 의미를 깨달았기 때문입니다. 어려운 말 대신 두 가지 비유로 설명하겠습니다.”

첫 번째 비유는 ‘손님’에 대한 것입니다.

여행객이 여관에 묵는다고 상상해 보십시오. 그는 하룻밤을 자거나 식사를 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볼일을 마치면 짐을 싸서 떠나며, 오래 머물지 않습니다. 반대로 그가 여관 주인이라면 이리저리 떠돌지 않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오래 머물지 않는 것을 ‘손님’이라 하고, 영원히 머무는 것을 ‘주인’이라 합니다.

두 번째 비유는 ‘먼지’에 대한 것입니다.

비 온 뒤 맑게 갠 아침을 상상해 보십시오. 햇살이 틈새로 방 안에 비치면, 빛 속에 떠다니는 먼지가 보입니다. 자세히 보면 먼지는 끊임없이 움직이지만, 허공은 고요합니다.

그러므로 고요한 것은 ‘허공’이고, 떠도는 것은 ‘먼지’입니다.”

교진여는 이 두 가지 생생한 비유를 들어 ‘손님과 먼지’에 대한 이해를 설명했습니다. 즉, 우리의 번뇌는 손님이나 먼지와 같아서 왔다가 가고 불안정합니다. 반면 우리의 참된 마음은 주인이나 허공과 같아서 항상 존재하며 변하지 않습니다.

이 설명은 우리의 본성이 청정함을 이해하는 데 도움을 줍니다. 번뇌는 손님이나 먼지처럼 일시적인 것일 뿐, 결국 사라집니다. 이를 이해하면 우리는 더 잘 수행하고 본래의 청정한 마음을 회복할 수 있습니다.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그렇다.” 그때 여래께서 대중 가운데서 다섯 손가락을 구부리셨다. 구부린 후에는 펴시고, 펴신 후에는 다시 구부리셨다. 그리고 아난에게 물으셨다. “이제 무엇을 보느냐?”

부처님은 고개를 끄덕이시며 손가락을 굽혔다 폈다 하시며 아난에게 물으셨습니다. “무엇이 보이느냐?”

아난이 말했다. “여래의 보배로운 손이 대중 가운데서 펴졌다 오므려졌다 하는 것을 봅니다.”

아난이 대답했습니다. “부처님, 손이 펴졌다 오므려졌다 하는 것이 보입니다.”

부처님께서 아난에게 말씀하셨다. “너는 내 손이 대중 가운데서 열리고 닫히는 것을 본다. 열리고 닫히는 것이 내 손이냐, 아니면 너의 보는 성품(견성)이 열리고 닫히는 것이냐?”

부처님께서 다시 물으셨습니다. “내 손이 펴졌다 오므려졌다 하는 것이냐, 아니면 네 눈이 펴졌다 오므려졌다 하는 것이냐?”

아난이 말했다. “세존이시여, 보배로운 손이 대중 가운데서 열리고 닫힙니다. 저는 여래의 손이 스스로 열리고 닫히는 것을 봅니다. 제 견성이 열리고 닫히는 것은 아닙니다.”

아난이 대답했습니다. “부처님의 손이 움직이는 것이지, 제 눈이 움직이는 것은 아닙니다.”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누가 움직이고 누가 고요하냐?”

부처님께서 다시 물으셨습니다. “그렇다면 누가 움직이고 누가 고요하냐?”

아난이 말했다. “부처님의 손은 머물지 않습니다(움직입니다). 제 견성은 고요함조차 초월해 있는데, 누가 머물지 않겠습니까?”

아난은 생각하더니 말했습니다. “부처님, 당신의 손은 움직이지만, 저의 보는 능력은 움직이지 않습니다.”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그렇다.”

부처님은 고개를 끄덕이며 말씀하셨습니다. “맞다.”

그때 여래께서 손에서 눈부신 광명을 아난의 오른쪽으로 비추셨다. 아난은 즉시 머리를 돌려 오른쪽을 보았다. 다시 아난의 왼쪽으로 광명을 비추시니, 아난은 머리를 돌려 왼쪽을 보았다.

그때 부처님께서 손에서 빛을 내어 처음에는 아난의 오른쪽을 비추고, 다음에는 왼쪽을 비추셨습니다. 아난은 빛을 따라 고개를 좌우로 돌렸습니다.

부처님께서 아난에게 말씀하셨다. “오늘 너의 머리가 왜 움직였느냐?”

부처님께서 물으셨습니다. “아난아, 왜 고개를 움직였느냐?”

아난이 말했다. “여래께서 묘한 보배 광명을 제 왼쪽과 오른쪽으로 비추시는 것을 보았기에 왼쪽과 오른쪽을 보느라 머리가 저절로 움직였습니다.”

아난이 대답했습니다. “부처님께서 비추시는 빛이 좌우로 움직이는 것을 보았기에, 제 머리도 따라 움직였습니다.”

“아난아, 네가 부처의 광명을 보고 머리를 좌우로 움직였을 때, 너의 머리가 움직인 것이냐 아니면 보는 성품이 움직인 것이냐?”

부처님께서 다시 물으셨습니다. “그렇다면 네 머리가 움직인 것이냐, 아니면 보는 능력이 움직인 것이냐?”

“세존이시여, 제 머리가 스스로 움직였습니다. 제 견성은 고요함조차 초월해 있는데 누가 움직이겠습니까?”

아난은 생각하더니 말했습니다. “부처님, 제 머리가 움직인 것이지, 제 보는 능력은 움직이지 않았습니다.”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그렇다.”

부처님은 다시 고개를 끄덕이며 말씀하셨습니다. “맞다.”

그때 여래께서 대중에게 말씀하셨다. “만약 중생이 흔들리는 것을 먼지로 여기고 머물지 않는 것을 객으로 여긴다면, 너희는 아난의 머리는 움직였으나 그의 본다는 것은 움직이지 않았음을 보았을 것이다. 또한 내 손이 열리고 닫히는 것을 보았으나, 보는 것(견성)은 늘어나거나 줄어들지 않았음을 보았다. 어찌하여 지금 너희는 움직이는 것을 자신의 몸이라 하고 움직이는 것을 자신의 환경(경계)이라 하느냐? 처음부터 끝까지 생각마다 생멸이 있다. 너희는 참된 본성을 잃고 거꾸로 행동하고 있다. 참된 마음을 잃고 외부 대상을 자신으로 인식하고 있다. 그리하여 너희는 윤회의 수레바퀴에 갇혀 있는 것이다.”

부처님께서 대중에게 말씀하셨습니다. “모두 똑똑히 들었느냐? 우리는 움직이는 것을 ‘먼지’라 하고 머물지 않는 것을 ‘손님’이라 한다. 하지만 다시 주의 깊게 생각해 보자.”

부처님은 아난을 가리키며 부드럽게 말씀하셨습니다. “아난을 보아라. 그의 머리는 움직이지만 그의 정신은 움직이지 않지 않느냐? 나를 보아라. 내 손은 펴고 오므리지만, 너희의 ‘보는’ 능력은 그것에 따라 늘어나거나 줄어들지 않지 않느냐?”

부처님은 모두가 생각할 시간을 주신 뒤 계속하셨습니다.

“그렇다면 왜 너희는 움직이는 것을 너희 자신으로 착각하고, 변하는 현상을 외부 세계로 착각하느냐? 태어나서 죽을 때까지 너희 생각은 끊임없이 생겨나고 사라지며, 그로 인해 본래의 참된 본성을 잃고 거꾸로 행동하게 된다.”

“너희는 참된 본성과 참된 마음을 잃어버리고 외부 사물을 자신으로 착각한다. 그것이 너희가 윤회 속을 떠돌며 해탈하지 못하는 이유이다.”

부처님의 말씀은 중요한 진리를 전해줍니다. 우리는 종종 변하는 것들을 우리 자신이나 진짜 세상으로 착각합니다. 하지만 사실 우리의 참된 자아, 우리의 본성은 변하지 않습니다. 마치 손이 움직이는 것은 볼 수 있지만, ‘보는’ 능력 그 자체는 움직이지 않는 것처럼 말입니다.

부처님은 모든 사람이 이것을 이해하고 표면적인 현상에 현혹되지 않고 자신의 불변하는 본성을 깨닫기를 바라셨습니다. 그래야만 번뇌에서 벗어나 진정한 자유와 행복을 얻을 수 있습니다.

이 가르침은 심오하지만, 자신과 세상을 진정으로 이해하고자 하는 이들에게 매우 중요한 지혜입니다.

참고 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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